일정 간격 정국 흔드는 이벤트...정치 참여 공식 선언보다 더 극적인 정치-경제 효과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또다시 예의 노련한 정치-경제적 센스(감각)를 보여줬다.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한통으로 다소 주춤하던 '정치인' 안철수 돌풍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자신 보유 안철수연구소 지분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내용 하나였다. 시가로는 1,5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메일 효과는 파괴적이었다. 서울 용산 소재 집앞에는 취재진이 진을 치고 일부 신문 지면에서는 1면 톱을 차지했다. 14일 밤부터 15일 오전까지 짧은 시간, 단숨에 벌어진 일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주가도 치솟았다.

    재산 환원 뜻을 밝힌 다음날인 15일 안철수연구소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1만2,200원, 14.99%) 상승한 9만3,60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안 원장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은 37.1%, 372만주. 이날 주가 상승에 따라 안 원장의 주식 가치는 약 3,028억원에서 3,482억원으로 상승했다. 이메일 한통으로 하루만에 454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안랩의 회사 펀더멘탈을 고려하면 이 같은 주가 상승은 비상식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추세로 가격이 오른다면 안 원장이 지분 절반을 내놓더라도 실제 재산은 큰 변동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사실 안 원장의 지분은 함부로 매각할 수 없는 상징적인 것이었지만, 이번 사회 기부 이후 정치적 행보를 위해 남은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수천억원에 이르지만 ‘그림의 떡’이었던 주식 절반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남은 절반을 현금화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으로 안 원장은 지분 절반을 내놨지만, 여전히 안랩의 최대 주주를 유지할 수 있다. 안철수연구소의 지분 구조를 보면 안 원장이 37.1%, 자사주가 13.9%, 원모씨가 10.8%를 보유하고 있다. 안 원장이 절반을 내놓더라도 18.55% 지분으로 여전히 최대 주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 ▲ 안철수 원장이 14일 자신이 가진 안철수연구소 지분 절반을 사회에 환원키로 하면서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대권 행보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해지면서 차기 대권 주자 경쟁 구도가 뒤흔릴 전망이다. ⓒ
    ▲ 안철수 원장이 14일 자신이 가진 안철수연구소 지분 절반을 사회에 환원키로 하면서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대권 행보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해지면서 차기 대권 주자 경쟁 구도가 뒤흔릴 전망이다. ⓒ

    경제적 이익 외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더욱 공고히 한 셈이 됐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은 실체가 없다’는 회의감이 도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안 원장은 그동안 정계 진출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회 환원 발표에 따라 안 원장의 정치권 진출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안 원장은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실천하는 것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이제 안 원장이 언제 대권 출마 선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여권 한 중진 의원은 안 원장에 대해 “굉장한 정치적 센스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그는 “뒤돌아보면 안 원장은 20여일에 한번씩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는 대중의 인식에서 잊히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실제로 안 원장은 지난 9월 2일 시장 출마 검토설로 언론에 처음 노출된 이후 9월 6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한 것으로 정치권과의 거리를 두려 했다.

    하지만 약 한달이 지난 10일10일 안 원장은 당시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는 말로 당시 언론에 등장했고 같은 달 24일에는 박 후보의 선거캠프를 찾아 편지 한통을 전하는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박 시장의 당선 이후 잠재적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안 원장이 사회 환원을 발표한 시점도 20여일이 지난 11월 14일이다.

    안 원장은 15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20~30일 마다 한번씩 언론에 노출되는 그의 행보가 '전략'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안 원장의 점진적 정계 진출 전략에 따라 그를 경계하던 정치권도 당분간은 쉽게 부정적 입장을 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의 본격 행보에 대비해 “그가 사회에 무슨 역할을 했나”며 공격을 준비해오던 정치권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된 셈이다.

    차기 대권 주자들도 안 원장의 사회기부에 대해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면서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는 등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