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류경회사' 사장 손건하, 아버지는 해외 공작원 거물마약 재배면적 1개군...분산재배로 주민들까지 오염 심각
  •  북한의 마약 총책은 "이 사람!"

    장진성 /시인,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저자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

    얼마 전 북한 내 심각한 마약확산 실태가 언론과 TV방송들에 소개됐다. 그러자 일부 탈북자들이 북한의 중앙당, 군, 국가보위부 등 권력기관들이 외화벌이 목적으로 마약을 제조 판매한다고 했는데 사실 이는 과장된 증언이다. 김정일이 허술하게 자기 범죄를 노출할 만큼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북한 정권의 마약범죄는 극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으며 그 보안을 위해 생산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단일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평양시 보통강호텔에서 청류관 방향으로 가는 길에 ‘류경회사’ 라는 큰 건물이 있다. 당 대외연락부 산하 회사인데 그 회사 사장은 ‘손건하’라는 사람이다.

      현재 김정일 정권의 절대적인 지원과 보호 속에 북한에서 유일하게 마약을 생산 판매하는 회사가 바로 ‘손건하’가 사장으로 있는 당 대외연락부 소속 ‘류경회사’이다.

    “류경회사”가 아편재배를 위해 소유한 토지만 일개 군 면적에 달한다.
    정권 차원의 마약범죄를 숨기기 위해 “류경회사”는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두 개 도에서 1개 농장, 1개 분조원칙으로 아편을 분산 재배하고 있다.

      인공위성 촬영으로도 아편대량 재배 현장을 발견할 수 없도록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2001년경엔 마약의 품질 개선과 대량생산을 위해 홍콩에서 현대적 설비들을 대거 들여오기도 했다.

    이 “류경회사”가 해마다 김정일에게 바치는 외화는 수천 만 달러에 달하며 그 공로로 ‘손건하’사장은 2003년 2월 16일 2중 노력영웅 훈장을 받기도 했다.

      ‘손씨가문’이라면 북한 무역업자들 속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이다.
    손건하의 형 손경철은 모든 국토가 국유화돼 있는 북한에서 최초로 부동산과 건설업을 시작한 인물이다.
    손건하의 아내 이해순은 ‘낙원백화점’, ‘대성백화점’등 정권 차원에서만 운영되던 외화백화점 체제를 깨고 북한 최초로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에 ‘서경상점’이란 개인 명의로 된 외화백화점 문을 열기도 했다.

      그 ‘서경상점’을 시작으로 지금은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설봉봉사소’, 평양시 북새동에 ‘개선상점’ 등 여러 지점들을 연이어 개업하기도 했다. 어쩌면 2000년 7,1조치 이후 김정일의 절대 신임을 이용하여 북한시장을 주도한 '북한판 재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손 씨 가문’의 특권과 엄청난 부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북한에는 두 개의 특권층이 있다. 하나는 권력특권층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특권층이다.
    자본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본 조총련 산하 기업인들이거나 그 친인척들, 혹은 해외공작원 가족들이다. 세대교체와 함께 일본 조총련이 위축되면서 교포출신 자본특권층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 북한 자본특권층의 주류는 해외공작원 가족들이다.

      ‘류경회사’ 손건하 사장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다.
    손건하의 아버지는 6.25전쟁 이후 1950년대 말 김일성이 당시 미화 24만 달러를 주어 마카오로 파견했던 해외공작원이었다. 해외 아지트 형성 목적으로 영주권을 따고 도박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면서 북한 대외연락부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해외정착인물로서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에게는 2남1여가 있었는데 북한의 인질정책에 의해 장남 손경철만 마카오에 데리고 나갈 수 있었다.
    사회주의 동구권 붕괴가 시작되면서 외교국가들과의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39호실이 위축되고, 대신 비외교 무역 전문부서인 김정일의 당 38호실이 득세하게 된다. 그 무렵 김정일은 과거 김일성이 파견했던 해외공작원들의 해외기업들에까지 눈독을 들이게 된다.

      하여 기업들의 개인상속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상속 통지를 하게 되며, 이에 반기를 든 해외공작원들이 김일성에게 신소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러자 앞장서 반발하던 해외공작원이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렇게 주춤하는 속에 제일 먼저 상부의 명령상속을 실천한 사람이 바로 손건하 사장의 아버지였다.

      그는 많은 외화를 김정일에게 헌금하고 장남이나 막내아들이 아니라 북한 당조직부에서 정략 결혼시킨 압록강대학 출신 대외연락부 공작원 사위를 자기 기업의 후계자로 선정하게 된다.
    그 공로로 손건하의 아버지는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두 번째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게 된다.

      하지만 후계자로 선정된 사위가 마카오 조직폭력배로 부터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배후로 의심되는 장남 손경철은 1995년 경 평양으로 긴급 소환되게 된다. 김정일은 손경철이 마카오 사업에서 손을 떼고 모든 인맥과 활동영역을 3남 손건하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대신 북한에서 비즈니스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특권을 주게 된다.

      하여 기관은 토지를, 개인은 돈을 내고 개인과 기관이 4;6으로 이익을 나누는 방식의 건설업은 손경철이 맨 처음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개인소유가 법적으로 금지된 사회주의 북한에서 한 가구당 5만 달러로 판매된 그 첫 고급아파트가 조선컴퓨터센터 앞에 위치한 평양시 만경대구역 선내동 5반이다.

    내가 탈북 할 때 당시 2004년까지 손경철은 그 아파트의 8층과 9층을 통째로 개인저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외공작원이 수 십 년 동안 만들어 놓은 회사를 통째로 가로챈 김정일은 그 후계자로 북한에서 교육받은 3남 손건하를 임명했다. 농업 성 산하 회사들은 농작물만, 수산 성 산하 회사들은 수산물만 취급하도록 무역규제가 엄격한 북한에서 이 “류경회사”만은 마약판매 편리를 위해 그 어떤 수출 수입규제도 받지 않고 있다.   또한 자금운반과 세탁을 위해 해외조폭 조직들과 심지어는 해외 주재 대사관 및 당 산하 비즈니스 지점들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평안남북도를 중심으로 북한의 북방지역은 심각한 마약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마약범죄를 숨기기 위해 북한 정권이 벌려놓은 광범위한 지역 에서의 아편 분산재배가 일반인들도 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또 그것이 돈이 된다고 하여 개인들에게까지 제조 기술이 확대되면서 그 피해가 더 늘어나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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