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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에 태어난 래아(2)의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난 것은 돌을 갓 넘긴 작년 7월부터다.
몸 곳곳에 난데없이 멍 자국이 생겨 없어지지 않았지만, 아버지 김진우(32)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 밝은 성격이었던 래아는 그때까지 몸 어딘가가 아픈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며칠 지나서는 피부에 상처가 난 것처럼 빨간 점들이 생기는 '점상출혈' 증상이 나타났다.
동네 소아과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투병생활의 시작이었다.
래아의 병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비정상 세포가 백혈구의 생산을 방해하는 암의 일종이다.
두살배기 래아는 웬만한 어른도 견디기 어렵다는 항암치료를 여덟 번이나 받았고 제대혈과 골수 이식 수술을 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계속된 치료에도 암세포는 여전히 전체의 20%가량이나 됐다. 독한 항암제 때문에 막 자라나던 래아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버렸고 체중도 3~4㎏이나 줄었다.
병원 치료가 더는 의미없다고 생각한 진우씨는 딸을 퇴원시키고 민간요법을 쓰거나 기도원에 들어가보려고도 했다.
진우씨는 24시간 딸을 돌볼 사람이 필요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부인 혼자서 버는 돈으로는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래아의 딱한 소식은 진우씨의 후배를 통해 모교인 연세대에 알려졌고 총학생회가 래아 살리기에 나섰다.
총학생회는 지난달 20일 학생회관 3층 총학생회실 앞에 흰색 상자를 놓아 헌혈증을 모으기 시작했고 래아 이름으로 된 후원계좌도 교내에 알렸다.
그러는 사이에 래아에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술 효과가 뒤늦게 나타나 좀처럼 죽지 않던 암세포가 최근 갑자기 0%에 가까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한때 자포자기 상태 직전까지 갔던 그는 남아있는 암세포들이 마저 사라지면 병원을 나와 예전처럼 쾌활해진 래아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진우씨는 "골수 이식 수술을 하면 보통 한 달 이내에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나타나는데 래아처럼 두 달 넘어서 상태가 좋아지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래아의 병세가 놀라울 정도로 호전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총학생회 이연상 대외협력국장은 "건강이 계속 안 좋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좋아졌다니 뿌듯하다. 헌혈증 몇 장이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배를 위한 학우들의 마음이 래아에게 전해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총학생회는 조만간 래아가 입원해 있는 서울삼성병원에 찾아가 그동안 모은 헌혈증서와 계좌를 통해 모금한 돈을 전달할 계획이다.
진우씨는 요즘 거대세포 바이러스(CMV)를 억제하는 항바이러스제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다.
외국에 주문을 하고 약을 받으려면 3주 정도 걸리는데 그 사이에 상태가 다시 악화되기라도 하면 힘들게 찾아온 '기적'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온정을 베풀어준 후배들에게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후배들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 남은 암세포와 꿋꿋하게 싸워 이기고 남에게 받은 만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