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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일제의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0대 애국자가 있다. 그 애국자의 94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국립서울현충원(원장 정진태)은 “19일 오전 11시, 애국지사묘역 9호에서 ‘송학선 의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거행되는 ‘송학선 의사 94주기 추모식’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송학선 의사’는 서울 출생이다. 17살 때 일본인이 경영하는 서울 남대문 호전(戶田)농기구 상사에서 근무했다. 송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숭배하며 자신도 일제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송 의사는 1926년 3월 15일 순종이 붕어(崩御)하자 사이토 총독도 반드시 조문할 것이라 판단하고, 18일 창덕궁 금호문 앞에서 기다렸다. 오후 1시경 일본인 3명이 탄 차가 창덕궁으로 들어가자 송 의사는 사이토 총독이 탄 차라고 생각하고 뒤쫓았다. 얼마 후 차가 금호문으로 나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자동차에 뛰어들어 2명을 사살했다. 차를 뒤쫓는 일본 기마경찰과 서대문경찰서 순사 오필환도 사살한 뒤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이후 그가 사살한 2명이 총독 일행이 아니라 일제 침략의 선봉이었던 국수회 지부장과 경성부협의원이었음을 알고 땅을 쳤다.
송 의사가 재판을 받을 때 경성지방법원의 일본인 재판관이 “피고는 어떤 주의자인가? 사상가인가?”라고 묻자,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경성지방법원은 송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27년 5월 19일 사형이 집행됐다. 송 의사는 1966년 5월 18일 애국지사묘역 9호에 안장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일 열리는 송 의사 추모식에는 기념사업회 회원, 국가보훈처·광복회 관계자, 추모객 등 4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현충원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나라사랑 정신의 계승발전에 일조하는 관련단체의 추모행사를 지속적으로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