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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재보선 전의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참모가 막 올린 보고서를 보다가 그 참모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한참을 몹시 나무랐다. 그 참모는 속된 말로 엄청 깨졌다.
이 대통령이 그 참모에게 화를 낸 이유는 하나다. 보고서가 지시한 내용과 달랐기 때문이다. A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는데, 엉뚱하게 B에 관한 보고서를 가져왔다. 한마디로 그 참모가 이 대통령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요즘 개각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한 참모의 얘기다.
이 대통령의 한 측근은 당시를 두고 “이 대통령이 그렇게 화를 낸 데는 아마 답답함도 함께 묻어 있을 것”이라고 1일 말했다.대통령의 의중을 못읽는 것에 답답해해
과천에 있는 내각도 아니다. 청와대 한 지붕 아래다. 그 안에 있는 참모 조차도 대통령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비슷한 일이 4.27 재보선이 끝난 뒤에도 일어나고 있다. 청와대 진영 개편 폭을 둘러 싼 참모들간 신경전까지 가세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상황인식과 서로간 이해관계에 따라 벌어지는 갑론을박이다.
개편 폭 논란의 꼭지점에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있다. 임 실장까지 포함하는 대폭 수준의 ‘면모일신’을 하느냐 아니면 임 실장을 교체 않는 소폭에 그치느냐를 두고 말들이 엇갈린다. 재보선 참패에 대한 청와대 책임성을 어디까지 할 것이냐가 기준점이다.
대폭과 소폭을 주장하는 양측간 감정 충돌 정황도 보인다. "자리 보전을 위해 대통령의 쇄신 뜻을 왜곡하고 있다"거나 "판을 크게 흔들어 자신들을 위한 틈이 생기기를 바라고 있다"는 식이다.
이 대통령의 내년 총선 출마자 교체와 관련한 지난달 28일 발언을 두고서도 이해가 상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에 출마할 사람들은 5월중 모두 나가라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반면 "출마 경험이 없어 지역구를 빨리 관리해야 하는 사람 먼저 나가라는 이야기"라며 다른 얘기도 내놓는다.
대통령 발언 두고 이해 세력간 엇갈린 해석
이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가야 할 참모의 대상을 “지역구가 처음인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하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참모끼리 오가는 말들이다.
“나는 7, 8월쯤 나가고 싶은데”, “지금 나간다고 해서 공천받을 상황으로 이끌 수 있을까”, “그럼 이미 자기 지역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늦게 나가도 된다는 거냐” 등 말들도 여러 가지다.
이 대통령과 수석비서관들만 나눈 얘기도 사실과 다르게 새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이른 시각 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선거 끝이라 함께 얘기나 나누려는 자리였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이 대통령이 "우리 정부는 친시장인데 (경제계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이 얼마 안돼 대기업에 퍼졌고 이어 언론에까지 알려졌다.
대기업 쪽에 새어나간 속도도 문제지만 이 대통령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을 질책했다”며 내용마저 왜곡됐다.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을 견제하자는 곽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반시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수석 참모들과 나눈 얘기가 이런 지경이다. 급기야 청와대 관계자가 나서 “이 대통령은 곽승준 위원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석들과 나눈 얘기도 왜곡돼 새 나간다
티타임 때 대화가 잘못 전달된 사례는 또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결과를 두고 "국민의 뜻이 무섭고 두렵다. 미소금융 등 서민을 위한 정책을 흔들림 없이 열심히 해나가자"고 수석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다음날 언론에는 "딴 생각하는 사람은 청와대 떠나라"고 했다고, 총선 출마자에 대한 부분만 오도된 채 보도됐다. 다시 청와대 관계자가 나서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출마한다고 다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미리 나가서 지역구를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고 설명해야 했다.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똑 같은 말을 두고도 참모들의 출신 성향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관료냐 아니냐, 경제냐 정무냐에 따라 각자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전파한다는 것이다.
이 정부 청와대에는 온몸 던져 일하는 사람이 없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참모들이 자신과 이 정부를 공동운명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이후의 자신의 진로를 더 걱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성토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 행정관의 말은 보다 직설적이다. “김대중 정부 때의 박지원 비서실장이나 노무현 정부 때의 문재인 실장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이들처럼 이 정부 청와대에서는 이 대통령을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는 이 대통령이 자신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할 인물들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런 ‘전사(戰士)’들을 곁에 두고 ‘일하는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채워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