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원에서 한 말기 위암 환자가 경찰관 3명 앞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환자 양모(59)씨는 "사장님은 내가 죽였다. 10년 동안 눈만 감으면 사장님은 물론이고 사장님 어머니 모습까지 아른거렸다. 죄책감 때문에 항상 두려웠는데 자백하고 나니 홀가분하다"며 울먹거렸다.

    경찰에 따르면 2000년 11월 강원도 평창군의 한 공장에서 경비반장으로 일하던 양씨는 평소 사장인 강모씨가 자신이 직원이라는 이유로 무시한다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강 사장이 자신의 아내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의심까지 하게 됐다.

    급기야 양씨는 강씨에게 각각 3천만∼5천만원의 빚을 진 같은 회사 직원 김모(45)씨 등 2명과 함께 사장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세 사람은 같은 달 5일 오전 2시께 술에 취한 채 회사 식당으로 들어오는 강씨의 머리를 미리 준비한 둔기로 내리쳤다.

    이어 사장실에 보관돼 있던 2억원 상당의 현금과 수표를 훔치고 강씨의 시신은 근처 시멘트 공장 부근의 야산에 묻었다.

    강씨 가족의 신고를 받은 평창경찰서는 수사를 벌였지만 범죄 혐의점을 찾지 못했고 단순 가출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용의자들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김씨 등은 훔친 금품을 도박과 경마장에서 탕진하고 다시 적지 않은 빚을 지게 됐다.

    양씨는 수사가 종결되자 곧바로 중국으로 떠나 4년5개월간 도피 생활을 했으며 귀국하고 나서도 사기 혐의로 기소돼 2년간 실형을 살고 지난해 10월 출소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양씨는 강씨의 유골을 이용해 돈을 벌 궁리를 하다 재수사의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

    양씨가 출소하고서 "유골을 찾아줄 테니 돈을 내라"는 제의를 해오자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강씨의 형이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 광진경찰서의 엄모 경위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것.

    광진서는 곧바로 재수사를 시작했지만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데다 뚜렷한 단서가 남아있지 않아 수사는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달 초 양씨가 중병으로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엄 경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양씨를 찾아갔다"고 했다.

    양씨는 위암 4기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1시간여 동안 엄 경위가 끈질기게 설득하자 눈물을 흘리며 범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엄 경위는 "짙은 후회가 느껴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양씨는 경찰이 강씨의 유골 수색 작업을 벌이기 시작한 20일 오전 9시20분께 숨졌다.

    경찰은 유골 수색이 끝나고 보강 조사를 마치는 대로 공범인 김씨 등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