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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있었다.
헐리우드 재난영화가 연상된다. 아니 방사능 물질 유출을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선이 확연히 드러났다. 인간의 취약성과 위대함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은퇴를 앞둔 원전(原電) 근무자가 죽을 각오를 하고 현장에 달려가는 모습은 숙연하고 위대하다. 가족을 잃은 채 재난현장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아낙의 모습에선 인간의 무력함이 처절하게 묻어난다.
10대 소년이 컵 라면을 손에 바쳐 들고 뜨거운 물 배급을 받으려고 줄을 선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그렇게 공손할 수가 없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바른 자세로 겸손하게 서있는 저 모습. 그것은 교육의 힘이고,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몸을 비틀지도, 새치기를 하려 하지도, 흐트러지지도 않은 소년의 방정함에서 “우리는?” 하는 자문(自問)을 금할 수 없다.
세 살 네 살 난 어린 딸 손목을 잡고 쓰레기 분리처리를 매일 아침 실천으로 가르쳐 준다는 일본의 가정교육. 사회윤리의 근본을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데 두고 있다는 일본의 문화. 이건 정말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선진국의 한 필수적인 조건은 역시 교양 있는 시민상(像)이다.
우리의 덕목도 많다. 우리는 정(情)이 많고 에너지가 충일(充溢)하고 훈훈하고 베풀성이 있다. 일본인은 그 점에선 우리만 같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기강(紀綱)이 서있는 풍토는 아니다. 광우병 폭란 때 경찰관의 호르라기 소리에 “야, 시끄럽다, 우리 아기 깰라!” 했다는 사례에서 '절망'을 읽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러나 그건 선진국에선. 아니 다른 후진국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현장은 가정, 직장, 공공사회, 학교, 등등이다. 이런 곳에 우리의 경우 기강, 공공윤리, 선진시민 교육이랄 게 과연 있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교육이 있나? 그건 일본식이니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어깨를 툭툭 부딪고 차 안에서 요란하게 전화를 하고 버릇없이 구는 어린이를 제지(制止)했다가는 어미한테 욕사발을 얻어 먹기 딱 좋은 나라. 그게 어느 나라일까?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다 있는 법이니 단점만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지향한다면, 그리고 동남아에 가서 선진국 국민임을 과시하고 싶은 한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공공 예의의 글로벌 스탠다드만은 “나 그 따위 것 몰라” 하고 살 수는 없다. 외국 항공사와 골프장이 한국인 고객을 기피하는 사례가 있었다면 그건 위험한 전조(前兆)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