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사능 유출 우려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후쿠시마 시민 상당수는 질서를 지키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먼곳으로 대피를 가거나 집안에서 나오지 않아 거리는 한산했지만 후쿠시마 시민들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공공질서를 지키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기자가 묵었던 시내 호텔 옆에는 15일 오전 공용화장실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호텔에서 한 블럭 떨어져 있으며 근방에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건물의 공용 화장실 앞에는 호텔 투숙객과 시민 50여명이 칫솔과 수건 등 세면도구를 들고 길게 줄을 선 것이다.

    이들은 뒤늦게 줄을 서게 된 한 외국인이 한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다급함을 호소하자 먼저 화장실을 쓰도록 배려해 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남성 숙박객 2∼3명은 양 손에 무언가가 담긴 듯한 맥주캔을 들고 떨어뜨리거나 내용물을 자칫 쏟을까 매우 조심하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캔 안에 뭐가 들어있냐고 묻자 이중 한 일본인은 "어젯밤에 맥주를 마시고서 소변을 빈 캔에다 해결했다. 날씨가 춥고 방에서 화장실까지 오기 귀찮아 그랬다"며 멋적게 웃었다.

    기자가 어렵게 구한 비즈니스호텔에는 단수 탓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투숙객은 받고 있었다.

    호텔 종업원은 "단수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고 아침식사 제공도 안된다. 세탁기를 돌리지 못해 침구류도 세탁을 못한 상태다. 그 대신 평소보다 숙박비를 1천∼2천엔 적게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는 탓에 방으로 가려면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이용해야 했지만 불편을 호소하는 투숙객은커녕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전날 밤 시의 번화가인 후쿠시마역(驛) 주변은 이미 인적이 거의 없었으며 인근의 대형 건물이나 24시간 운영되던 편의점도 대부분 불이 꺼져있었다.

    자칫 `유령 도시'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길을 가는 몇몇 시민들의 표정에서 피폭을 향한 불안감을 읽을 수는 없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쌍의 연인이 밝게 웃으며 자전거로 인적이 끊긴 인도를 질주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한 주점에서 만난 혼다라는 이름의 20대 청년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 시민 대다수가 집 안에서 재택근무 등을 하며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원전에서 10∼20㎞ 정도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 피폭이 두려워 후쿠야마현(縣) 밖으로 대피한 현민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고 강조했다.

    센다이로 가기 위해 찾아간 후쿠시마역 앞 버스터미널은 전날 밤처럼 여전히 인적이 거의 끊겨 있었다.

    그러나 버스들은 대부분 탑승할 승객이 없는데도 승강장으로 들어와 출입문을 열었고, 정해진 출발 시각이 되자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승객을 태우기 위해 목적지로 떠났다.

    원전에서 약 100㎞밖에 떨어지지 않은 후쿠시마시. 그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