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 두 원로배우 내달 '삼월의 눈' 공연
  •  "평생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제 인생은 늙는 줄도 몰랐어요."(장민호)
    "맞아요. 몇십년 됐다는 소리를 들으면 '벌써?'하면서 깜짝 놀라요."(백성희)
    한국 연극계의 '영원한 현역'인 배우 백성희(86)와 장민호(87)씨. 이들이 다음 달 자신의 이름을 단 '백성희 장민호 극장'에서 개관작으로 '삼월의 눈'을 올린다.

  •    지난 11일 찾아간 국립극단 연습실. 두 원로 배우는 카랑카랑한 발성으로 아들, 손자뻘인 후배들을 압도하며 현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연습을 마친 뒤 곧바로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이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의 이름을 단 극장에서 첫 무대를 여는 소감과 한평생 무대를 지켜온 신념 등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지. 우리 이름을 단 극장이 문을 열고 거기서 개관작도 하고. 기록적인 일 아닌가 싶어요.(웃음)"(장민호)
    '삼월의 눈'은 극작가 배삼식과 국립극단 예술감독인 연출가 손진책이 '최고령 현역'인 두 선배를 위해 직접 쓰고 연출한 헌정 공연.

       손 감독은 "'백성희 장민호 극장'의 첫 무대인 만큼 두 분의 연극을 올리고자 했다"면서 "조심스럽게 여쭤봤는데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나서주셨다"고 전했다.

       실제로 '삼월의 눈'에서는 1시간 20분가량 이어지는 극을 두 사람이 대부분 이끌어가야 하기에 대사량이 방대하고 체력 소모도 크다.

       하지만 "힘들 것 하나 없다"는 게 두 원로 배우의 한결같은 대답.

       "평생 훈련된 상태로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힘들게 뭐있어요. 계속 해왔던걸 하는건데. 대사 외우는 것도 상황에 놓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죠.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한번도 한적 없어요."(백성희)
    '삼월의 눈'은 전통 한옥을 지키며 살아온 노부부의 하루를 애잔하게 그려내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준다. 주인공인 두 사람의 호흡이 관건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무대에 같이 선 세월이 60년인데.. 부부로 출연한 것만 20편 가까이 돼요. 이번 무대에서는 '혈육이 무엇인가' 하는 한국적 정서를 짙게 그려낼 겁니다."(장민호)
    "서로 척하면 척이죠.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아, 다음에 뭘 하겠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이런 상대역이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행운 아닐까요?"(백성희)

    백씨와 장씨는 20대 초반 연극 무대에 데뷔해 각각 400여편, 23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여든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해 연극계의 '살아 있는 역사'로 통한다.

       평생 무대를 지켜온 원동력은 뭘까.

       "3시간짜리 공연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커튼콜을 마친 뒤 분장을 지우고 무대로 돌아와요. 깜깜한 객석엔 아무도 없죠. 그때의 처절함. 그런 매력을 다른 어디서 맛보겠습니까."(장민호)
    "전 그냥 무대에서 살았어요. 완벽하게 극중 인물이 돼서 저는 사라져버리는 거죠. 평생 연극을 한다는 게 자기 인생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는건데..그래도 좋으니까.(웃음)"(백성희)
    무대에서 살아온 60년 세월이 "엊그제 일 같다"는 데도 두 배우는 의견을 일치했다.

       "장 선생을 20대에 처음 봤는데 여든이 넘은 지금 봐도 늙은 줄 모르겠어요. 수백명의 인생을 사느라 제 삶을 살 겨를이 없어서 그렇겠죠. 지금도 연기한 지 몇십년 됐다는 말을 들으면 '벌써?'하면서 깜짝 놀라요."(백성희)
    장 씨도 "다른 사람으로 사느라 자기 인생이 늙는 줄은 몰랐다"고 맞장구쳤다.

       인터뷰 말미 '삼월의 눈'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두 노배우는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수려한 언변을 자랑하던 모습과 사뭇 달라보였다. 마치 신인 배우가 된 듯 단어를 한자한자 신중히 골랐다.

       "한국 연극은 몇세기 동안 천시받는 예술이었어요. 국립극단이 독립하고 배우 이름을 딴 극장도 생겼으니 연극계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봅니다."(백성희)
    "우리들 얘기를 들려드리는 작품이에요. 심혈을 기울여 품위있는 연극을 선보이겠습니다."(장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