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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가 영국 일간지 기자들과 만나 냅킨에 낙서처럼 갈겨쓴 '합의'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을 공개키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일 가디언에 공개된 어산지의 자서전 '위키리크스: 비밀주의와 전쟁에 나선 어산지에 대한 탐구' 발췌본에 따르면 가디언 기자들인 이언 트레이너와 닉 데이비스는 지난해 벨기에의 한 카페에서 어산지를 만나 자사가 문제의 외교전문을 최초로 공개하려고 무려 6시간이나 협상을 벌였다.
가디언의 유럽담당 에디터인 트레이너는 "줄리언이 (협상 당시) 랩톱을 급히 꺼내고 열어 무언가를 했다"면서 "그는 (주변에 있던) 냅킨을 한 장 뽑아들고는 '오케이. 당신들은 가져도 좋다'고 해서 '뭘 갖느냐'고 물어보니 '전체 (전문) 파일을 가져도 좋다. 패스워드는 바로 이 냅킨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레이너는 이어 "나는 놀랐다. 우리는 매우 긴 협상과 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할 줄 알았지만 (협상타결은) 신속히 이뤄졌다. 이것은 신뢰가 담긴 행동이었다"고 덧붙였다.
어산지는 당시 뉴욕타임스와 독일의 슈피겔에 이어 프랑스 르몽드와 스페인의 엘파이스 신문과도 외교전문 공개와 관련한 합의를 봤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외교전문 일부가 가디언 TV의 경쟁사인 '채널 4'에 제공됐을 때 어산지에게 "배신감"을 느껴 그와 맺은 관계를 파기했다고 발췌본은 전했다.
발췌본은 또 어산지가 자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내용을 뉴욕타임스가 보도하자 이에 분개함으로써 외교전문 공개와 관련한 협상들이 더욱 꼬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문제의 외교전문이 런던에 있던 미국 언론인 히서 브루크의 손에 들어갈 것이 명백해졌다는 정황이 드러났을 때 어산지는 가디언 등 5개 언론사를 통해 전문 공개를 시작하는 방안을 결국 허용했다고 발췌본은 밝혔다.
이에 따라 전문의 첫 묶음은 지난해 11월28일 GMT(그리니치 표준시) 21시30분께 5개 언론사를 통해 세상에 동시에 내놓기로 했으나 슈피겔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은 흐트러지게 됐다.
즉 전문이 게재된 슈피겔지 적재차량이 너무 일찍 출발해 슈피겔지가 스위스 바젤의 한 기차역에 하루나 일찍 도착했고 이 때문에 슈피겔지는 '라디오 바젤'의 손에 먼저 들어갔던 것.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상황 때문에 5개 언론사는 3시간여에 걸쳐 전문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영국에서 보석 상태에 있는 어산지는 성추행 혐의와 관련해 스웨덴으로 추방될 처지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