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는 미중 수뇌회담의 영향을 받아 남북회담에 응하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한국 정부에 남북회담을 넌지시 권유해온 것이 사실이다. 일찍이 빌 로저스(미국 휴머리스트)가 “미국이란 나라는 전쟁에서 패배한 적도 없지만 회담에 승리한 적도 없다”라고도 말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무튼 우리 정부가 회담에 응한다고 해도 북한의 의도를 직시하지 못하면 또 한 번 말려들게 될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서해의 ‘분쟁지역화’를 조금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포격으로 서해가 분쟁지역인양 세계에 ‘커밍아웃’한 바 있다. 이번에는 회담의 선제요구라는 일종의 ‘평화공세’를 통해 문제의 성격을 강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회담이 성사돼야 앞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회담만큼이나 세계 언론의 시선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73년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실지(失地) 시나이에 군사적 교두보를 마련했던 제4차 중동전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때 사다트의 목표는 이스라엘 자체를 괴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협상입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한정전략(限定戰略)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사다트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일변도였던 미국이 중재자의 자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북한도 서해에서 한정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회담이 북한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것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예비회담 단계에서부터, 금강산 총격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 포격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처벌 등을 선제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만약 북이 서해의 영유권이나 ‘평화지대’ 운운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태전개에 따라서는 앞으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을 여러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에 서해 평화지대 구상도 있었지만, 헨리 키신저마저 서해 경계의 법적 유지에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더욱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전 국정원장이 비슷한 얘기를 일본의 좌경 잡지에 기고하는 해괴한 사태마저 일어났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이 그들의 기획대로 진행되면 최종 목표인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다. 그들은 다음 단계로 6자회담에서 미국에 대해 ‘소액의 양보’를 지불하는 제스처를 지어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라늄 핵의 제조보류나 플루토늄 핵실험의 일정기간 유예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라늄 핵은 탐지도 어렵고 플루토늄 핵실험의 유예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 다만 문제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상대방의 ‘내용 없는’ 양보에도 곧잘 ‘감동’하기 때문에 걱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유예되는 것은‘한반도 사태’일 뿐이다.

    우리는 NLL의 역사는 모르면서 서해평화지대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를 교육시켜야 한다. 휴전 당시에 유엔군은 평안북도 용암포까지의 모든 섬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 서해 대부분의 도서들은 휴전에 따라 북한에 넘겨졌다. 마크 클라크 장군은 서해 5도만은 서울방위에 긴요하기 때문에 그대로 확보했던 것이다. 휴전당시에 해군력이라고는 전무했던 북한은 이를 ‘감지덕지’ 수용했었다. 그런 그들이 문제를 삼고 나온 것은 73년부터였다.

    서해5도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서울방위에 미흡함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40년 전인 1969년 한국군은 북한의 특공대가 고속정으로 한강을 타고 여의도까지 침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서울 시내를 포격하고 도주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당시 미8군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약간의 군사적 조치로 보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서해평화지대 운운하는 것은 명백히 이적성(利敵性)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한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했을 때에 처벌토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 결정에서 ‘공익이라는 개념의 불명확성’을 이유로 들었다. 현대사회의 多岐性을 감안하더라도, 휴전상태의 국가에서 공익의 개념이 불명한 것은 더 큰 재앙의 예고일 수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분위기 조성도 안 된 개헌논의를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류의 관계법을 신속하게 개정하는 일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특수부대의 규모만 걱정할 것이 아니다. 적 침투 시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각종 허위 유언비어를 온라인에 퍼뜨려 군 작전을 방해하고 민심을 교란하면 치명상을 입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김철 /객원논설위원,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