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반대파 “아덴만 여명 작전, 정권 레임덕 막으려….” MB, 2007년 마부노호 피랍당시 유일하게 가족 방문 위로
  •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성공한 지 사흘째, ‘이번 구출작전은 이명박 정부에게 호재’라는 보도가 슬슬 흘러나온다. 이들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마부노호 피랍 선원 가족을 위로한 일을 모르는 것 같다.

    정부의 모든 활동을 정치와 결부시키는 사람들

    지난 21일 오후 3시 36분 軍은 “지난 15일 아라비아해 인근에서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우리 청해부대가 성공적으로 구출했다”고 공식발표했다. 이에 나흘간 ‘엠바고(보도자제)’를 지켰던 언론은 물론 전 국민이 환호하며 軍과 정부에 찬사를 보냈다.

    이 대통령도 軍의 브리핑 직후 특별 대국민담화를 통해 작전 성공을 치하했다. 이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우리 군이 방금 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원 8명을 포함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해냈음을 (국민들게) 보고 드린다”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다. 앞으로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 발표는 곧 언론을 통해 퍼졌다. 언론도 나흘간의 ‘피 말리던 엠바고’를 벗어던지고 저간의 사정을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1차 구출작전 때의 위기, 전체 구출작전 과정, ‘삼호주얼리호 석 선장’의 영웅담, 부상을 입은 해군 UDT대원들 소식, UDT대원들의 작전 장비, 풀려난 삼호주얼리호의 현재 상황 등이 물밀 듯 쏟아져 나왔다.

    국민들은 길을 가다 또는 인터넷을 쓰다, 일을 하다 이 소식을 듣고 환호했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서도 인질구출작전 성공 소식이 퍼졌다. 8차례의 피랍 때마다 인질을 구출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무기력에 국민들이 느꼈던 분노와 수치심을 말끔히 해소해주는 소식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칭찬도 쏟아졌다. 일부 네티즌은 ‘구출왕 이명박’이라는 패러디물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다.

    한편 이런 분위기가 불만인 사람들도 있었다. 인질구출 성공 보도 수 시간 후 트위터와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는 ‘해군 UDT의 작전인데 왜 대통령이 자기가 명령했다고 담화발표 하느냐, 다 된 밥에 숟가락 놓는 거냐’ ‘이명박이 직접 작전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칭송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해적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왜 해적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식으로 인질구출작전 자체를 폄하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은 대다수 국민들의 비난만 살 뿐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사라졌다.

    구출작전 성공 사흘째인 23일, 더 이상의 특별한 보도가 이어지지 않자 이제는 ‘이번 구출작전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이익을 볼 것’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주장들은 ‘레임덕이 올 것을 우려한 이명박 대통령이 인질의 무사구출, UDT대원들의 안전 여부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한 건을 올리려 했다’는 식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가을에 했던 일을 모른다.

    2007년의 '비극' 목격한 이명박 대통령

    2007년 5월 15일 케냐 인근 공해상을 지나던 원양어선 마부노 1호와 2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됐다. 당시 마부노 1, 2호에는 한국인 4명을 포함,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마부노 호 피랍 사건은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 반면 두 달 뒤인 7월 19일 아프간에서 피랍된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청와대까지 나섰다. 이때 납치범인 탈레반이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약속해줬고,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일명 ‘선글라스맨’으로 불린 국정원 요원을 대동하고 외신 앞에 나서 온갖 이야기를 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이 어찌어찌하여 해결된 뒤에도 마부노 1, 2호 피랍은 여전히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당시 기자는 부산을 찾아 마부노 1, 2호 석방을 위해 애쓰고 있던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해상노련)을 취재하고, 가족들과 연락하면서 당시 ‘정부 당국자’라는 자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전해 들었다.

    마부노 호를 납치한 해적들은 우리 정부가 계속 무관심하자 선원 가족들에게까지 직접 연락해 협박하고 몸값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마부노호 관계자와 선원 가족들에게 피랍 선원들의 상황이나 진행 내용을 외부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하면서 일부 선원가족들에게는 ‘만약 언론에 알리면 (선원들이 돌아온 뒤에) 두 번 다시 배에 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등의 협박까지 했었다고 한다. 한편 부산시와 해상노련은 정부와 소위 ‘진보진영’에 다양한 경로로 도움을 호소했지만 모두 외면당했다.

    이런 무관심에 분노한 부산시는 일부 교회들과 함께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겨우겨우 100만 달러 가까운 몸값을 마련했다. 이렇게 성금을 모으고 재협상을 하던 2007년 10월 31일, 대선 유세 중이던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유세 일정에 따라 부산에 도착했다. 이 후보는 이때 부산의 지역뉴스를 보고선 곧바로 해상노련 사무실을 찾아 상황설명을 듣고, 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당시 이 후보는 “앞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세계 진출이 확대될수록 이런 일이 더 발생할 소지가 크다”며 “정부도 이번처럼 준비 없이 있다가 사태를 장기화하지 않도록 빨리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5일 후 마부노 1, 2호는 피랍 174일 만에 풀려났다. 해적들은 부산시민들이 마련한 몸값을 고스란히 챙겨갔다.

  • ▲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부산 방문 며칠 후 마부노 1, 2호가 풀려났다. 당시 성금을 모았던 단체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민들에게 감사표시를 하고 있다.ⓒ
    ▲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부산 방문 며칠 후 마부노 1, 2호가 풀려났다. 당시 성금을 모았던 단체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민들에게 감사표시를 하고 있다.ⓒ

    한편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이명박 후보는 자신 또한 젊은 시절 태국에서 반군들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어 평소 ‘재외국민보호대책’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부노 1, 2호 사건을 나중에 알게 된 후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의 대선공약 중에는 ‘재외국민보호법 제정’이 들어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사람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삼호주얼리호 구출을 승인한 것도 이 같은 경험과 깊은 관계가 있다. 지금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을 무조건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며, 부정적인 의견을 다는 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거론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통령은 개인의 생각은 팽개치고 모든 걸 ‘성인군자’처럼 판단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도 사람이다. 그가 젊은 시절 태국에서 ‘힘없는 나라 국민’이라 겪었던 일 때문에 ‘재외국민보호’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를 대통령이 된 후에도 잊지 않고, 재외 한국인 피랍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진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닌가. 또한 그동안에는 실패 가능성, 또는 정보누설 문제로 대외적으로 의견을 밝히지 않다가 기회를 잡아 군사작전을 명령, 성공시키고 이를 당당하게 밝히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구출작전 방해, 폄하를 하다하다 안 먹히니 이젠 모든 걸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치부하는 행동은 정말 비겁하다.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리 자기네 주장과 다른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할 정도의 객관성과 관용을 갖추는 게 정상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 반대자들의 깜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진보’니 ‘민주’니 하는 이름은 소말리아 해적에게나 줘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민주평화통일자주 해적’,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