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도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사람의 특성 중 하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는 특성. 또는 하려는 특성,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서는 좀이 쑤셔서 백이질 못하는 특성. 이런 특성이 있어서 사람은 문명을 일구어 놓았다.

     그러나 반면에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 사람은 만악(萬惡)의 근원이기도 하다. 인간이 좀 가만히만 있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간 특성의 나쁜 면을 경계하기 위해서 성현(聖賢)들은 묵상과 수련을 가르쳤다.

      남북관계를 보아도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는 혼선이 빚어지기 일쑤다. 될 때는 하고 안 될 때는 안 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호사가(好事家)들이 하자, 하자, 안 하는 놈은 평화와 화해를 반대하는 ‘강경파’다, 하는 통에 헷갈림과 갈등이 적잖이 일어난다.

      김일성 김정일은 유신 때, 5공화국 시절, 6공화국 시절, 김영삼 시절의 4대에 걸쳐 대화를 거부한 적이 있다. 남쪽이 ‘독재’라 그런 정권하고는 대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었다. “남조선에 민주(좌경) 정권이 들어서면 대화를 하겠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 나름의 ‘원칙’으로 나갔던 셈이다.

      이처럼 북한은 대화를 우리가 아는 대화 아닌 ‘남조선 변혁’이라는 전략을 위한 전술 차원에 낮춰 두고 있다. 남쪽의 일부 식자들은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대화와 교류와 지원을 하면 그것이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초창기에 이 가설은 사회의 대세가 되다 싶히 했다. 그러나 결과는?

      결과는 남쪽 ‘햇볕 먹물'들의 그런 낙관적 가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그것을 역이용(逆利用)한 김정일의 ‘평화적 남조선 변혁’을 위한 ‘아주 유리한’ 조건 성숙으로 낙착되었다. 10년이면 가설의 부정적 검증이 됐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일은 ‘대화=돈은 먹고 북한은 요지부동, 남한은 허무는’ 작전임을 명백히 했다. 그리고 그 작전은 먹혀들었다.

      그러나...‘햇볕 호사가'들의 가만있지 못하는 버릇은 참으로 집요하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천안함, 연평도가 있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햇볕 식 대화' 운운인가? 호사가의 그런 글이 논란을 빚은 모양이다. ‘천안함’을 딱 잡아떼고, ‘연평도’를 우리 탓이라고 우기는 철면피에 대해 지금은 기가 막혀서라도 가만히 있어야 할 때 아닌가? 그게 철든 사람의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가만히 있는’ 온당한 처신 아닌가? 초상집에 가서 왜 웃지 않고 우느냐 시비하는 식이니...

      잠시도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경망스러움이여 ! 무엇을 시도 때도 없이 꼭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무엇을 하지 않아 주는 것이 오히려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자신을 위해 좋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