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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몸값 中低價’ 될라
한국은 국제정치적 위상 설정의 철학과 실제(實際)를 새롭게 정비해야 할 때를 맞고 있다. 우선 현실을 둘러보자.
신문들은 일본과 중국이 한국을 가벼이 보는 것 같다는 기사들을 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 방문을 돌연 취소한 데 이어, 일본 외상도 한국방문 일정을 당초의 이틀에서 하루로 단축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진 선봉 특구에는 중국군이 경비업무를 위해 주둔했다고도 한다. 독도 주변 해상에서는 한국 경비정과 일볹 경비정이 신경전을 벌렸다는 보도도 있고, 오바마-후진타오 정상회담을 앞두고서는 미-중이 남북대화를 종용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정세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 마디로, 한국의 ‘힘의 국제경쟁력’이 시험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발전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의 위상은 낮지 않다. 그러나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군사-정치적으로는 ‘중저가(中低價) 상품’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묘한 이치다.
북한은 경제적으로는 거덜 난 집단이지만, 군사적으로는 미국도 어쩌지 못하는 사실상의 핵(核) 보유국 지위를 향해 가고 있다. 미국 안에는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솔솔 새어 나오고 있다. 일본 당국도 북한과 직접 트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 추세가 증폭된다면 북한은 강대국들과 마주 앉기 시작할 것이고, 한국은 남의 의사에 끌려가는 처지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는 경제주의 위주로, 국내정쟁(政爭) 위주로 가고 있다. 대통령도 정계도 이런 북핵(北核)을 핵(核)으로 하는 동북아 국제정치의 ‘오로지 이롭지만은 않은’ 상황에 대해 별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지가 않다.국제정치에서는 힘이 빠지면 무시당한다. 무시당하면 한말(韓末)의 패턴이 되풀이 된다. 1970년대 초(初), 박정희 대통령도 미-중 수교를 전후해서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주국방론이었다. 지금은 국제정세가 그 때와 꼭 같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빠지면 열(列)에서 낙오(落伍) 한다”는 일반원칙 자체는 크게 달라졌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은 국제경쟁력 있는 ‘국가의 지탱력’을 1950년대에는 한-미 동맹에서, 1970년대에는 한-미 동맹과 병행한 자주국방론에서 구했었다. 그 후 오늘까지는 그 저축(貯蓄)을 파먹으면서 주로 ‘관행적인 외교’와 ‘쳇바퀴 남북 관계’에 경주해 왔다. 그러다가 북한 핵(核)을 만났다. 이제는 다시 오늘 시점(時點)의 ‘자주국방적’ 측면을 떠올릴 때가 아닐지.
자주국방이란 용어(用語)가 혹시 개념상의 혼선을 빚을 염려가 있다면, 그리고 혹시 너무 옛날 냄새를 풍긴다면, 그 대신 ‘우리 몸값 올리기 위한 우리 밑천 늘리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일부 여론은 “우리도 핵(核)을...”이라는 아젠다를 제기하고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야. 그러나 그게 과연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 리더십의 낮은 질(質)과 수준으로 보아 한국이 과연 미국 중국 등, 국제사회의 보복적 간섭과 제재(制裁)를 뚫고 갈 수 있을지가 우선 미지수다.
북한은 폐쇄적 비밀사회다. 그러나 우리는 사통팔달로 뚤린 개방사회다 못해, 아예 줄줄 새는 구멍 난 사회다. 미국은 유신체제도 뚫고 들어와 간섭을 했었다. 북한은 무역 의존도가 미미하고, 우리는 그것이 엄청나다. 중국이, 그리고 미국도 만약 우리를 견제할 필요가 생겼을 때 무역을 지렛대로 삼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그러나 그런 논의를 포함해서 우리가 우리의 몸값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전방위(全方位)로 토론해 보자는 데는 이의(異意)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경제주의 일변도, 복지 포퓰리즘, 국내 정쟁의 아젠다에서 다시 비장한 국민적, 국가적 ‘안보 아젠다’로 옮겨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우선 물어야 한다. 지금의 한국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으면 마이너 리그로 밀려난다. 마이너로 밀려나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김정일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할까?
이명박 대통령, ‘차기(次期)’들, 식자(識者)층, 국민이 “경제는 필요조건 아닌 충분조건이다”라는 식의 단선적(單線的) 낙관론을 재점토 해 봤으면 한다.<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