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대표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인이 대표역할현행 신문법, 지난 정권 덕에 만들기는 쉽고 퇴출은 어렵게서울시 등록된 언론사 수는 1,000개…담당자는 1명
  • 북괴의 연평도 도발과 관련, ‘연평도 도발은 남북한의 영토분쟁이고, 미국이 북한의 대화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탓’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던 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한글판’이 발행될 수 있었던 게 허술한 신문법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北주장 대변하는 인민일보 한글판

    지난 1월 6일 <동아일보>는 ‘작년 11월 말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남북한 간의 영토분쟁에 불과하며, 북한의 대화요구에 응하지 않은 미국 탓’이라는 기사를 1면에 내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한글판(이하 인민일보)’이 현재 국내 가판대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동아일보>는 이 ‘인민일보’가 현재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것은 물론 각 급 학교와 관공서에도 배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SBS> 또한 같은 소식을 전했다.

  • 이후에도 ‘인민일보’는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기사를 내놨다. ‘인민일보 한글판’의 실질적인 대표인 쉬바오캉(徐寶康) 한국판 대표는 신년호에서 ‘한국의 통일원년 구상은 중대한 전략적 신호’라는 시론을 통해 ‘한국의 북한흡수통일 전략은 세계가 다 안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올해 통일정책이 북한의 강렬한 항의를 불러오고 한반도 정세가 더욱 긴장돼 동북아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국제사회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쉬 대표의 이런 ‘한국 때리기’는 처음이 아니다. 쉬 대표는 작년 11월 29일∼12월 5일자 인민일보 한국판에서는 '연평도 사건의 4대 배경'이라는 기사를 작성해 1면에 게재했다.

    쉬 대표는 연평도 도발 배경이 "평화협정이 아직까지 휴전협정을 대신하지 못해 한반도는 아직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고, 언제든 충돌이나 교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남북간 상호 포격사건은 필연적이었으며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북한이 NLL을 인정한 적이 없고, 멋대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한 것을 근거로 내세우며 “이번 포격의 본질도 (남북한 간의) 영해와 영토 주권 다툼”이라고 주장했다.

  • 쉬 대표는 이에 더해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고 미국에 대화를 촉구했으나 미국이 이를 거절하고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한 점,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변화가 없었던 점도 연평도 도발의 주요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공산당 기관지도 한국서 발행할 수 있는 허술한 ‘신문법’

    이런 주장을 펼치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가 대체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팔릴 수 있을까. ‘인민일보 한글판’ 대표처와 중국 대사관 공보관실 등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계속 통화중이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외신등록 담당자와 통화를 했지만 “외국 언론의 한국 지사 설치나 등록 업무는 모두 지자체에 이관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 왔다. 궁금증은 지자체의 언론사 등록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풀렸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신문법)’과 관리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현행 신문법 제13조 1항, 4항에 따르면 외국인은 언론사의 발행인이나 편집인, 심지어 에디터도 될 수 없다. 외국정부나 단체는 국내에서 마음대로 신문을 발행할 수 없다. 특히 신문법 제13조 4항의 3에서는 외국인이 신문사 주식의 30% 이상(일간지 외에는 50%)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서 발행되는 ‘인민일보’의 '법적 대표'는 한국인이다.

    서울시에 등록할 때의 서류에도 그렇고, ‘인민일보’ 홈페이지(www.renmin.co.kr)에서도 발행인과 편집인은 한국인이다. ‘인민일보 한글판’의 '법적 대표'인 박귀현 대표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민중당 지구당 위원장, 선진국민연대 공동대표,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을 지냈다. 그는 중국 본사 인사의 방한 등 일부 대외행사에는 동참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대외활동을 하거나 언론과 접촉할 때는 박 대표보다 쉬바오캉 대표가 더 자주 나타났다. 회사 소개 코너 중 인민일보 소개, ‘인민일보’ 본사 사장과 주한 중국대사 축사에서도 ‘인민일보 한글판’은 중국 인민일보의 지사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편, 북한의 명백한 도발을 한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등의 최근 ‘인민일보’ 기사는 신문법 제22조 2항 ‘미풍양속 및 사회윤리 저해 소지’ 등에 따라 등록을 허가한 지자체에서 신문 발행을 정지시키거나 법원에 신문등록취소 청구소송을 낼 수 있다(심각한 수준의 종북매체들에 대해서도 지자체가 발행정지나 등록취소 청구소송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사가 등록주체인 지자체로부터 제재를 당한 경우는 거의 없다. 서울시 정기간행물 등록 담당자는 “서류 상 문제가 없기에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답했다.

    '민주화세력' 주장하던 ‘언론 자유’가 중국 공산당 선전 도운 꼴

    서울시 담당자는 한숨을 쉬며 “이런 문제가 있어도 그동안 언론사에 대한 규제가 너무 허술해져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문민정부 이후 ‘언론의 자유’를 내세운 주장이 강해지면서, 언론사 설립 진입장벽이 낮아지거나 대부분 철폐되고, 덩달아 ‘사이비 언론’을 제재할 방법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서울시에 정기간행물 등록을 담당하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인 점도 문제였다. 문광부 등에 따르면 2010년 1분기를 기준으로 인터넷 신문을 포함한 언론사 숫자는 2,000개를 넘는다. 그 중 절반가량이 서울에 있다. 게다가 매년 수십 개의 언론사가 생겼다가 사라진다. 1년에 한 번 정도만 기사를 올리다 선거철에만 움직이는 ‘사이비 언론’도 수백 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언론도 신문법 제23조 때문에 지자체가 직권취소를 할 수가 없다.

    서울시 담당자는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철저히 합법적으로 서류를 갖춰 활동하는 언론 보도의 내용을 일일이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인민일보 발행도 동북공정 일환 아닐까” 주장도

    한편 ‘인민일보’의 연평도 관련 보도는 물론 국내에서 한글판이 발행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비판여론이 나오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대체 누가 허가를 내 준거냐, 당장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요즘 인터넷 상에 중국을 옹호하는 자들이 부쩍 늘었다’며 ‘이 또한 동북공정의 일환일지 모른다’며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네티즌들의 지적은 ‘인민일보’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이며 일종의 ‘선전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 게다가 한국 언론은 중국에다 중국어로 된 언론을 쉽게 세울 수 없으며, 취재 또한 각종 허가가 필요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언론을 통한 심리전'이라는, 중국의 '비대칭 위협'에 대해서도 대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