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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페론이 생각나는 까닭
민주당이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와 무상보육을 들고 나왔다. 대중이 솔깃하지 않을 리가 없다. 구호대상자, 빈곤층, 중하층, 중산층, 중상층, 부유층의 차별도 두지 않은 채 덮어놓고 ‘무상’ 운운, 한 묶음으로 뭉뜽그려서 구호화 하는 것도 ‘정책적’이라기보다는 ‘선동적’이다. 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 아닐까? '두루 공짜' 세일 광고로 '쏠림 표'를 왕창 쓸어 담겠다는 것. 누군들 공짜를 반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이 생각난다. 그녀는 공짜의 여왕이었다. 인심 쓰기의 여왕이었다. 덕택에(?) 아르헨티나는 2류~3류로 떨어졌다. 돈을 더 많이 벌지 않으면서 있는 돈 펑펑 쓰고서야 어떻게 한 나라, 한 국민이 재정파탄에 이르지 않을 수가 있나?
‘복지’라는 말 자체의 사전(辭典)적인 의미는 누구나 마다할 리 없다. 그러나 특정한 복지 모델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경고하는 것이 만약 “너 그러면 복지에 반대하는 거냐?” “그런 너는 대(大)부루주아의 대변인?” 하는 식으로 단죄되는 일이 있다면 그건 곤란하다. ‘복지’는 권력화 된 이데올로기로서 신성시 할 것이 아니라, 정교한 정책적 효율성의 과학으로서 다뤄야 한다.
그래서 예컨대 에바 페론 방식의 ‘복지’ 아닌 ‘거덜 내기’ 같은 것은 당연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의 ‘고복지(高福祉) 고세율(高稅率)’이 초래한 사회적 침체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대안(代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신성모독(神聖冒瀆)이 아니라, 시행착오 과정에서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효율성 최적화(最適化)의 문제다.
이럼에도 오늘의 한국 정계 일각의 ‘복지 아젠다’는 다분히 정치화 되어 있고 권력화 되어 있다. 따라서 효율성 최적화라는 기술적 요청이 충분히 중시(重視)되지 않고 있다. 그냥 ‘무상으로’라는 캠페인이 과연 현대국가의 과학적 정책일 수 있을까? 물론 꿩 먹고 알 먹고를 동시에 할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알 먹기 위주로 가자고 할 것이다. 성장 위주 때문에 더 이상 복지수요를 묵살할 수 없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에바 페론이나 유럽이 밟은 전철을 고스란히 단순반복 할 이유는 없다. 최대한으로는 그보다 더 나은 길, 최소한으로는 그보다 부작용이 덜한 길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 선거 크리스마스를 의식한 선거 산타클로즈만은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련만.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그 다음에는 또 무엇?
<류근일 /본사고문, 언론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