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법의학팀, 민간 컬렉션 소장품서 발견, 감식 확인
  • 1610년에 암살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미라 처리된 머리 유골이 확인됐다고 학자들이 밝혔다.

    프랑스 가르슈 소재 레몽 푸앵카레 대학병원의 법의학 연구팀은 앙리 4세의 것으로 추정된 채 민간 컬렉션에 소장된 머리부분 미라가 감식 결과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첫 왕인 앙리 4세는 프랑스혁명 시기인 1793년 일부 군중이 파리 북부 생드니의 왕실교회를 급습, 안장돼 있던 왕족들의 묘를 파헤쳐 참시하는 과정에서 함께 머리가 잘려진 뒤 버려졌다.

    장례 당시 향유 처리됐던 앙리 4세의 머리는 이후 수습돼 수집가들 사이에 손바뀜이 일어나면서 한 민간 컬렉션에 소장됐다.

    연구팀은 검시 결과 오른쪽 콧구멍 위의 11㎜ 길이 짙은 상흔과 귀고리를 착용했던 오른쪽 귓불에 난 광택있는 구멍이 우선 앙리 4세의 초상 사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3D스캐너와 X선 촬영 결과 드러난 좌측 윗부분 턱뼈에 있는 5㎜ 크기의 상처도 1594년에 있었던 또 다른 암살 시도 당시 생긴 상처와 부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붉고 하얀 머리카락과 이가 많이 빠져 있던 불량한 치아상태도 일치하고 남아있는 턱수염 및 콧수염도 당시 시대 특징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사망 당시인 1610년과 1793년의 참시 당시 및 20세기 초에 소장자가 각각 뜬 두상 마스크에 드러난 얼굴 골격도 앙리 4세의 초상 특징과 일치했다.

    방부 처리에 사용된 유향은 특히 결정적인 증거로 참고됐다.

    앙리 4세는 죽기 전 이탈리아식 유향처리를 하라고 말했으며 전문가들은 이 미라에 남아있는 유향의 냄새가 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결과도 1,450년에서 1,650년 사이로 앙리 4세의 생존기간인 1,553년에서 1,610년과 맞았다.

    연구팀은 그러나 이 미라가 그동안 수많은 손을 거쳐 오염되지 않은 부분을 채취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에 DNA 검사는 실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미라는 "옅은 갈색에 입이 열려 있고 눈은 부분적으로 감겨 있었으며 보존 상태가 뛰어나 모든 조직과 내부 기관이 보존돼 있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전문가 프랑크 뤼흘리는 DNA검사가 있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면서 이 때문에 앙리 4세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연구팀이 앙리 4세로 추정할 수 있을 만큼 범위를 좁혔다고 평가했다.

    앙리 4세는 신교도와 구교도 사이의 종교 갈등을 조정하는 등 선정을 펼쳐 선량왕이라는 칭호도 갖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 의학전문지 BMJ(브리티시메디컬저널)에 15일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