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김포등서 北 해안포 기지까지 사정거리 안에천안함 사태 이어 국가-군 수뇌부의 '확전 기피' 문제

  • 북한의 연평도 기습포격이 벌어진 지 사흘째 북한 측의 반응은 느긋한 반면 정작 피해자인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왜 더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군은 ‘대기 중인 전투기가 미사일을 쏘았다면 확전 우려가 있어 그랬다’는 설명만 하고 있다. 정말 우리 군에는 다른 대응 수단이 없었을까.

    연평도를 도울 수 있었던 해병대 장비

    23일 오후 북한의 해안포 공격이 시작되자 우리 군은 즉각 F-16 전투기 2대를 출격시켰다. 이어 SLAM-ER이라는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을 탑재한 F-15K도 현장에 도착했다. 연평부대의 K-9 자주포는 6문 중 3문이 적 포격과 정비불량 등으로 고장 나는 바람에 3문으로만 1차 대응사격을 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 해안포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연평부대의 자주포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연평부대에는 K-9 자주포(155mm) 6문과 KM-101 견인포(105mm) 6문, 발칸포(20mm)와 고정식 해안포(90mm 전차포 개조)만 있다. 미사일은 유효 사거리 5km를 조금 넘는 단거리 대공미사일 미스트랄뿐이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면 서쪽으로 백령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강화도와 김포가 있다. 모두 해병대가 주둔하는 곳이다. 한편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의 무도 해안포 기지와 개머리 해안포 기지는 연평도와는 14km, 백령도와는 약 90km, 김포나 강화와는 50여km 떨어져 있다. 

  • ▲ 90년대부터 서해와 동해 일대에 배치된, 해병대의 하푼 지대함 미사일. 사정거리가 100km에 달해 북한군에게는 위협적이다.ⓒ
    ▲ 90년대부터 서해와 동해 일대에 배치된, 해병대의 하푼 지대함 미사일. 사정거리가 100km에 달해 북한군에게는 위협적이다.ⓒ

    그런데 서해 5도와 김포, 강화에 주둔 중인 해병대에는 사거리 100km 이상, 원형공산오차(CEP. 폭탄 또는 미사일 발사 시 표적과 실제 탄착점의 평균 오차) 10m 내외인 하푼 지대함 미사일 부대가 있다.

    포격 끝난 뒤에야 ‘확전 우려 때문에…’

    이 하푼 미사일은 우리 육해공군이 모두 갖추고 있는 대함 미사일로 미사일에 장착된 레이더로 목표를 스스로 추적해 찾아가는 시스템(능동형 레이더 유도방식)을 갖추고 있다. 표적을 찾으면 급상승했다 강하해 맞추기 때문에 파괴력도 크다. 우리 군은 이 미사일을 베이스로 해 사정거리 180km 이상인 '해성' 미사일과 사정거리 150km인 '해룡' 미사일을 만들어 배치해 놓고 있다. 이 미사일의 특징은 반드시 군함만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라는 점. 만약 이런 미사일로 적 해안포 진지를 직접 타격했더라면 북한의 2차 포격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군은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포격 당시 연평도 상공에 있던 F-15K 전투기에는 SLAM-ER 미사일이 실려 있었다, 군은 이 또한 사용하지 않았다. SLAM-ER은 사정거리 280km인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로 원형공산오차가 3~4m에 불과하다. 덕분에 벙커 안에 있는 무기나 병력도 파괴할 수 있다. 우리 군은 이보다 사거리가 짧은 팝아이(100km), JDAM(20km)과 같은 유사한 무기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평도 포격 당시 공군 전투기들은 이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포격이 끝난 뒤 군은 “저쪽(북한군)은 포로 공격하는데 우리가 만약 미사일로 대응하면 교전규칙 중 ‘비례 대응의 원칙’을 벗어나게 돼 저쪽에서 전면전으로 몰고 가는데 빌미가 될 수 있었다”며 ‘어쩔 수 없었다’는, 마치 ‘포 공격에는 포로만 대응할 수 있다’는 식의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모순이다. 이번에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의 무기는 122mm 방사포(무유도 로켓탄)와 152mm 곡사포(해안포) 등이다. 우리 군이 대응에 사용한 무기는 155mm 자주포다. 이것 또한 비례의 원칙을 어긴 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F-15K에 장착돼 있던 SLAM-ER은 일종의 순항 미사일이라는 점에서 ‘비례 대응의 원칙’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푼 미사일은 그 정도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여기다 백령도 부대는 같은 해병대가 공격받는 상황인데도 왜 연평도 부대를 돕기 위해 나서지 않았을까. 혹시 군 수뇌부가 막았던 것일까.

    무기는 ‘땅’이 아닌 ‘국민’ 지키라고 사준 것

    북한군의 기습공격이 있은 사흘 째, 언론 등에서 ‘왜 군은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했는가’하는 문제 제기가 커지자 청와대와 군은 현행 교전규칙을 보다 공세적으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계획’이다. UN군 사령부가 교전규칙 수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독자적으로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후 약방문’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들이 사 준 무기’를 제대로 쓰는 것이다. 특히 북한군의 해안포나 갱도 진지 등에 대응하기 위해 구입한 유도 무기를 이럴 때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무기는 ‘존재 의미’마저 없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만약 이번 북한군의 공격에 대응하면서 더 많은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미사일 몇 발로 해안포 진지를 공격했었더라면 북한군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UN군 사령부가 우리 군이 교전규칙을 바꾸겠다는데 반대할 수 있을까.  

    천안함 사태에 이어 이번에도 안보에 심각한 ‘공백’이 있다는 게 드러난다. 그 ‘공백’이 전투 장비의 성능이나 ‘말단 병사’들의 ‘사기’ 문제가 아니라, 국가 수뇌부, 군 수뇌부의 ‘정신 문제’ 때문이라는 것도 나타났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 때문에 국민과 장병들이 쓰러져도 자기네 문제를 고칠 의지도, 용기도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