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은 작가가 자초한 것..결정 번복 불가" 밝혀톨스토이, 1901년 정교회 독선 비판하다 파문
-
'작가로서 톨스토이의 위대성은 인정하지만, 파문 결정을 취소할 수는 없다'.
러시아 정교회가 세계적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에 대해 1901년 내린 파문 결정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18일 보도했다.
러시아 정교회 주교회의 책임서기 티혼 세프쿠노프는 이날 "톨스토이는 교회의 파문을 자초했으며, 교회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은 뒤 스스로 이를 부인하지 않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사실을 강조했었다"며 "신성 종무원은 1901년 2월 20일 톨스토이 파문 결정을 내리면서 이미 행해진 사실(파문 결정)을 단지 확인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작가가 교회와 화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교회를 부정함으로써 초래된 파문 결정은 취소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티혼 서기는 앞서 러시아 도서연맹회장 세르게이 스테파신이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을 맞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주교 앞으로 서한을 보내 작가에게 동정심을 베풀어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 이같이 답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의 권위주의와 독선을 비판하며 자비, 비폭력, 금욕을 강조하는 새로운 기독교 창설을 주창하다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
티혼 서기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27세 때 벌써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가 쓴 일기에서 드러나며, 말년에는 실제로 자신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조그만 (종교) 집단을 만들어 정교회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다.
티혼 서기는 이어 "위대한 작가가 말년에 고통스런 영혼의 갈등을 겪었음이 분명하다"며 "그가 (1910년) 가출을 결심하고 '야스나야 폴랴나' 영지를 떠나 처음으로 찾아간 곳도 자신의 추종자들인 '톨스토이주의자'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정교회 수도원 '옵티나 푸스틴'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시골 역사 '아스타포보'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도 톨스토이는 옵티나 수도원으로 이오시프라는 수도승을 보내달라는 전보를 치라고 지시했으나, 두 명의 성직자가 아스타포보로 왔을 때 작가의 제자와 추종자들이 성직자와 작가의 만남을 가로막았다고 티혼 서기는 주장했다.
티혼 서기는 "정교회는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작가의 영혼의 운명을 지켜봤었다"며 "그의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일부 비양심적 역사학자나 언론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교회가 작가에게 저주를 내린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교회 신자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톨스토이의 위대한 작가적 재능을 존경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의 반(反) 기독교적 사상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