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종목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자유형 100m.   하지만 박태환(21.단국대)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자유형 200m와 400m 금메달로 이미 진가를 알렸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17일 오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이 열린 광저우 아오티 아쿠아틱 센터.

       종목마다 헤드폰과 체육복을 바꿔가며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하던 박태환은 짙은 회색 체육복에 은색의 헤드폰을 끼고 천천히 출발대로 향했다.

  •    가볍게 찰랑대는 수면을 힐끗 바라본 박태환은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수건을 들고 출발대로 다가갔다. 출발대 위에 남은 물기를 정성껏 닦아낸 박태환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면 아시안게임 2회 연속으로 3관왕에 오를 수 있었다. 박태환이 여유로움 속에서도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이유였다.

       '삑~' 짧고 낮은 출발 신호가 울리자 박태환은 가볍게 몸을 날렸다. 
       반응 속도는 0.69. 8명 가운데 가장 빠른 3명에 속했다.

       힘차게 물살을 제치고 나아갔지만 초반에는 좀처럼 탄력이 붙지 않았다. 3레인 루즈우(중국), 5레인 스텅페이(중국) 사이에서 뒤쪽으로 조금씩 처졌다.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4번 레인에서 결승을 치렀다.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초반 스피드가 늦은 박태환은 경기에 앞서 "좌우 선수의 물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운데 서면 안된다"라고 걱정했다. 초반 분위기는 박태환의 우려대로였다.

       자꾸만 처지던 박태환은 50m 반환점을 5위로 통과했다. 1위로 반환점을 찍은 루즈우(23초71)보다 상당히 늦은 24초02의 기록이었다.

       금메달은커녕 입상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상황. 루즈우를 응원하는 중국 관중의 환호와 북소리는 더욱 커져 갔다.

       그런데 이때 박태환의 폭풍 같은 '질주'가 시작됐다. 한 명씩 차례로 제쳐나가던 박태환은 어느새 선두 루즈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마침내 80m 지점에서 대역전에 성공했다. 탄력이 붙은 박태환은 다른 선수가 쫓아올 틈을 주지 않고 터치패드를 가장 먼저 찍었다. 
       곧바로 중국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반면 태극기를 휘날리던 한국 응원단은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은 자유형 100m에서 우승을 거머쥐자 박태환은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한국 교민에게 답례했다. 한국 관중에게 손을 내밀어 대형 태극기를 받아들고 몸에 두른 뒤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곧이어 열린 여자 평영 200m 결승. 박태환의 금메달 획득으로 감격한 한국 응원단은 한결 여유 있는 마음가짐으로 여자 수영의 간판 정다래(19.전남수영연맹)의 경기를 지켜봤다.

       정다래는 앞서 열린 평영 50m, 평영 100m에서 아깝게 4위에 그쳤다. 이날 목표는 입상이었다.

       정다래는 50m를 2위(32초89)로 가볍게 통과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100m를 1위(1분9초36)로 돈 뒤 2위와 차이를 벌려 갔다. 1분46초71로 150m를 지났을 때는 2위와 0.47초나 차이가 났다.

       하지만 막판으로 접어들며 눈에 띄게 처지기 시작했다. 20~30m를 남겼을 때는 쑨예(중국)에게 거의 따라잡혔다. 결국 쑨예와 0.25초의 간발의 차(2분25초02)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전광판의 정다래 이름 옆에 '1'자가 선명하게 뜨자 한국 응원단은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며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자신의 우승에 스스로 놀란 듯 정다래는 물 속에서부터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취재진과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대성통곡한 정다래는 태극기를 두르고 시상식에 입장하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정다래는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서 자꾸 눈물이 난다"라고 감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