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일을 보러 광화문에 들렀다가 지난 8일 뉴데일리에 실린 ‘광화문 은행나무들의 수난’ 기사가 떠올랐다.
    광화문 광장 조성으로 이주한 은행나무가 옮겨진 곳에서 예전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을 잃고 쇠약해져 영양제 공급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랜 세월 광화문에서 지낸 입장에선 정든 은행나무였다.
    이맘때면 노란 단풍으로 물들어 드물게 도심에서 시정(詩情)을 느끼게 했던 나무들이었다.
    그 나무들이 이제 옮겨진 곳에서 자리를 못 잡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도 성의를 다했겠지만, 나무는 옮겨심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한번 뿌리 내린 곳에서 옮겨 심으면 그 곳이 아무리 토질이 비옥해도 예전의 푸르름을 회복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되레 시들해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이다.

    요즘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행보를 보면 옮겨 심은 나무의 어려움을 보는 것 같다.
    손 대표도 자신이 선 자리를 잘 알 것이다.
    당적을 옮긴 손 대표는 민주당 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고 출발했다.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한 것이 아니라 뒤처져 출발했고, 경쟁에서 이겼다.
    손 대표가 가진 정치적 이미지와 특유의 정치력으로 이룬 승리였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더라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돌’인 처지에 대표 자리에 오른 것이다.
    당 대표에 올랐어도 손 대표 가슴에, 그리고 민주당 토박이들에게 ‘굴러들어온 돌’이라는 부담이 쉽게 지워질 리 없다.
    손 대표는 이를 의식한 것인지 연이어 정부나 여당을 겨눠 강성 발언을 토해냈다. 그 소리는 정부 여당에 하는 비판이자 함께 민주당에 “난 확실히 민주당 사람”이라는 선언으로 들리기도 한다.
    손 대표의 심정을 국민들도 잘 헤아릴 것이다.

    그런데 최근 손 대표의 행보는 ‘조금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청목회 로비를 겨눈 검찰의 조사에 대해 “야당 탄압”이라고 반응하고 또 지난 7일엔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다.
    야당의 당내 경선 역시 국민들의 민의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국민의 지지가 손 대표의 손을 들어줘 대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손 대표의 최근 몇몇 행보는 자신의 손을 들어준 국민의 심중을 돌보지 않은 듯해 유감이다.
    청목회 수사는 엄연한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이다. 배경이 어떻든 정치권의 검은 돈을 수사한다는데 국민들이 싫다고, 안된다고 할 사람은 드물다. 반발하는 것은 여의도 사람들뿐이라는 얘기다. 검찰 수사에 대한 야당 공조를 국민들이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너무 ‘오버’이다.
    봉하마을 방문 역시 그렇다.
    손 대표의 봉하마을 방문이 본인으로선 ‘친노 껴안기’일 수 있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북한의 ‘유훈통치’를 흉내 내자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국민들이 손 대표를 지지하는 것은 그가 경기도지사 시절, 그 열정적이던 도정 운영과 빛나는 성과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 같은 훈장이 평생 정치만 해온 민주당의 다른 주자들과 차별화되고, 민심과 기대를 끌어 모을 수 있는 핵심인 것이다.
    손 대표가 민주당에서 뿌리 내리려면,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스스로 장점을 가리고 구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굴러 들어온 돌’이 왜 당 대표까지 올랐는지 누구보다 손 대표 본인이 잘 알 것이다.
    그렇게 민주당을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