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치에 해괴한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정당의 노선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그야말로 해괴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정당은 노선 표방을 상품의 포장지를 바꾸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정당의 노선은 정당의 생명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 그 노선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당분자가 되었고 분당과 탈당이 잇달았다. 많은 경우 목숨까지 온전치 못했다.
    엊그제 한나라당의 대표가 자기당의 노선이 이제부터 ‘중도…’로 변경되었다고 선언했다. 아직 감각적 분류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친서민’을 빼놓고는 그나마 그 중도가 무엇인지 실체의 제시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노선이랍시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서 공식 혹은 정식으로 결의되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났다. 선언 뒤 이틀도 안 되어 부자감세정책이 그 당내에서 말썽이 났다.

    왜 이런 해괴한 현상이 벌어질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정당의 노선이란 것은 한나라당식으로 당대표와 연설문 작성자가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간단히 결정된다면 그 정당은 이미 이념적 동일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정당이 아니다. 그저 권력을 향한 개인의 정치적 기회나 엿보는 사람들이 모인 ‘도당(徒黨)’이다(하긴 요즘 보면 도당적 단결력도 보이지 않지만).

    정당의 노선결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예를 들어본다. 독일 기민당은 창당 1945년에는 ‘기독교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나 1949년에는 ‘기독’을 탈색시키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내세웠다. 이는 지금도 독일경제운용의 기본철학이다. 그 변경과정에서 치열한 당내토론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독일 사민당은 1945년 ‘하노버 행동강령’을 통해 폭력혁명, 공산독재노선과 일정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내 이데올로기분쟁과 국제정세 때문에 그 뒤에도 상당기간 ‘행동강령(당시의 정세에 적합한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노선)’만 가진 상태에서 ‘기본강령(장기 노선)’은 확정하지 못했다.
    사민당이 기본강령을 확정한 것은 패전후 무려 14년이 지난 1959년 ‘바드 고데스베르크’당대회였다. 이 기본강령에 입각해서 사민당은 폭력혁명, 프롤레타리아독재와 공식 결별했다. 물론 관련 정강과 정책도 면밀하게 수정했다. 그동안에 사민당 내에는 수차의 전당대회,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당내 좌파는 우파를 사회주의의 배반자, 부르주아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고, 우파는 좌파를 독단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치열한 논쟁이 14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1950년 코민포름은 일본 공산당의 노사카 산조(野坂参三)의 평화혁명론을 공격했다. 일공(日共) 내부는 코민포름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둘러싸고 양분됐다. 코민포름에 반론을 제기한 이른바 ‘소감파(所感派)’와  이를 지지한 ‘국제파’가 그것이다. 결국 미야모토(宮本賢治)와 시가(志賀義雄) 등의 국제파는 제명됐다. 정당의 노선 결정은 그만큼 그 과정과 결과가 지엄하다. 물론 이들 예보다 이전에는 러시아에서 멘세비키와 볼세비키가 갈라지고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가 살벌한 쟁투를 벌인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둘째, ‘중도…’란 것이 주창자가 먼저 노선이랍시고 명명할 성질의 것이 원칙적으로 아니란 점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중도…’라고 노선을 스스로 작명한 것은 아마 DJ가 최초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정이 있었다고 본다. DJ에게 이러한 노선명명은 그를 향한 색깔시비를 비껴가면서 자신의 이념적 신념을 알리고 싶었던 고육지책이었다. 노선은 근본적으로 당내정당의 정강에 입각한 정책이다. 그 정책을 제3자가 보고, ‘이는 좌익노선이다’ 혹은 ‘우익…’, 아니면 ‘중도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는 순서이다. 정당 스스로 ‘우리는 중도’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작가나, 화가, 혹은 작곡가가 ‘나는 고전주의’, ‘나는 낭만주의’,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먼저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평론가의 영역에 속한 것을 작가자신이 먼저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욱이 한나라당처럼 정강, 정책, 어느 하나 정리도 안한 상태에서 중도부터 선언하는 것은 일종의 몰상식이다.
    한국정치에서 좌익정당의 경우는 다소의 노선투쟁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이른바 보수정당에서 이 문제는 완전 불모지대라고 할 수 있다.

    <김철 /전국회의원,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