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⑮  
          
     나는 하루코가 두 사내에게 어떤 말을 했는가 알지 못한다. 둘을 데리고 길가로 가더니 한참동안 이야기하고 돌아왔으니까. 하루코의 출현에 두 사내도 나만큼 놀란 것 같다.

    돌아온 두 사내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고는 경관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러자 하루코가 망연한 표정을 짓고 서있는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차분한 얼굴이다.

    아카마스는 나와 병원에서 만난 다음날에 사망했다.

    그러나 나는 장례식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코를 그날 이후로 처음 만난다.

    하루코가 말했다.
    「저 대표자회의 첫날부터 여기 와 있었어요.」
    나는 시선만 보냈고 하루코는 말을 잇는다.
    「선생님의 회장 취임 연설도 교회 안에서 들었습니다.」
    「......」
    「애국동지회 회장이 되신 것 축하드려요.」
    「하루코」

    내가 하루코의 팔을 잡아 길가로 옮겨 가 섰다. 아직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내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어떻게 이 먼 덴버까지 온 거야?」
    겨우 그렇게 묻자 하루코의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떠올랐다.
    「덴버에서 조선인 교포 대표자 회의가 열린다는건 다 알려져 있었거든요.」
    하루코가 말을 이었다.
    「당연히 선생님이 참석하실 줄 알았지요. 그래서.」
    「그럼 왜 날 찾지 않고?」
    「항상 여러 분과 함께 계셔서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오늘...」
    「고맙군. 인사가 늦었어.」
    「그, 두사람 모두 조선인이에요.」
    하루코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아버님의 정보원이었죠.」

    나는 다시 발을 떼었고 옆을 하루코가 따라 걷는다. 여름이었지만 로키 산맥을 훑고 내려온 서늘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참, 제가 직장을 옮겼어요.」
    하루코가 문득 생각났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보스턴의 사립학교에서 동양문화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잘됐군.」

    내가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하루코는 워싱턴대에서 내 옆으로 옮겨온 것이다.

    내 시선과 마주친 하루코가 물었다.
    「불편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럴 리가 있나?」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그건 내가 할 일이지.」

    마침내 내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나는 처음부터 하루코가 싫지 않았다. 청순했고 밝았으며 개성이 강한데다 영민했다. 더욱이 미모까지 갖췄으니 같이 걷는 지금도 뭇 남자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저, 아리랑 배워주세요.」
    이제는 긴장이 풀린 하루코가 옆으로 바짝 붙어 걸으면서 말했다.
    「아주 부르기 쉬운 곡 같아요. 두 번만 가르쳐주시면 부를게요.」
    「그러지.」

    내 가슴도 밝아졌다. 이런 분위기는 오랜만이었다.

    하루코가 말을 잇는다.
    「그날 그레이스 교회당에서 아리랑을 듣고 나도 눈물이 났어요.」

    나는 머리를 들고 먼 쪽에 펼쳐진 로키산맥을 보았다. 정상에 쌓인 눈이 흰 구름과 섞여져 있다.

    그때 하루코가 콧소리로만 아리랑의 첫 구절을 불렀다. 정확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걸으면서 하루코의 아리랑 허밍을 들었다.
    지금도 그 콧노래가 귀에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