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민주사회는 공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구성원들의 협동을 이루어낼 수 있는 공정한 제도가 갖추어져야 하며, 그 구성원들은 또한 자유와 평등을 향유하는 시민으로서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 하에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가장 적합한 원리는 무엇인가를 탐색했다. 롤스는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철학 교수로 있었는데 그의 정의(justice) 이론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연구의 고전에 속한다.
     

  • ▲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뉴데일리
    ▲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뉴데일리

    롤스는 자신의 정의 이론을 전개하기 위해 원초 상태(original position)라는 초기 조건을 가정했다. 원초 상태에서 구성원은 다른 사람이든 자신에 대해서든 누가 어떤 계층에 속해 있으며, 천부적 재능은 무엇인지 등 우월한 협상력을 가질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전제되는데, 이를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 한다. 무지의 베일을 쓴 구성원은 이타적 생각이나 질투에 의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초기 조건 하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헌법을 제정한다면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하는가? 이 질문이 바로 롤스가 제시한 정의 이론이다.
     
    롤스의 정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1.각 개인은 정치, 언론, 사상, 종교, 양심의 자유 등 기본 자유가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2.기본 자유가 보장된 조건 하에, 각자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직업과 지위에 결부된 불평등은,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공정하다는 조건 하에서 허용된다. 또한 그와 결부된 수입과 부의 분배는 가장 혜택을 못 받은 계층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제 1 원칙은, 기본권의 보장은 경제적 부의 분배 이전에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는 것이다. 이 원칙은 실제로 롤스의 정의론의 기본 전제이기도 한데, 이는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 즉 시민이 자유나 평등이라는 두 가지 도덕적 권한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면 민주시민으로서 정의의 원칙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떤 전체를 위한 효율이나 목적을 위하여 소수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제 2 원칙은 제 1 원칙이 지켜진 조건 하에 논의되는 것으로, 이는 다시 두 가지 원칙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첫째는 우선 직위, 직업의 선택 기회가 만인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직위나 직책이 한도가 정해져 있는 일종의 제로섬(zero-sum) 재화이므로 특히 ‘공평무사한 기회의 배분’은 중요하다고 보았다. 롤스는 직업의 선택은 각자가 지닌 재능에 따라 적합한 직위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재능의 수준에 따라 차등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조건 하의 차등은 만인에게 이득이 되는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 예컨대 기업가정신이 있는 사람에게 기업을 경영하도록 함으로써 생산성을 올리게 되면, 그 본인이 가져 가는 인센티브를 제한 나머지는 모든 일반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둘째는 일단 직위, 직업이 결정된 상태에서 부의 분배는 가장 혜택을 못 받은 계층에게 가장 이익이 많이 가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롤스는 직위나 직책이 일단 결정되는 것은 매우 임의적인 특징이 있어서 일종의 자연적 복권(natural lottery)에 당첨되는 것과도 같은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가족 제도가 존속하는 한 가정의 형편에 따라 더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등 직업이나 지위에 대한 기회의 완전한 평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롤스는 직업의 선택과 부의 분배에 있어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은 절대적인 평등에 있지 않고, 효율에 따른 불평등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라 한다.
     
    결론적으로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무엇인가 직업, 직위들 중에서 하나씩 선택하여 자신의 역할을 하는 정돈된 사회의 모습을 제시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나 정보를 이용해서 자식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이는 롤스의 정의 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정의 사회를 깨는 행위이다. 하지만 롤스의 제 2 원칙에서 보듯이, 공정한 절차가 지켜지는 한 능력에 의한 차등은 인정해야 한다. 더 나아가 비록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직업과 직위가 일종의 복권과도 같은 행운임을 인식할 때, 그런 직위를 얻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늘 배려하고, 부의 분배에서나마 보상을 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도덕적 선의에 의해서 그리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지의 베일을 쓴 사람이라는 공평한 초기 상태를 가정하고 사회의 틀을 짠다면 롤스의 정의의 원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지의 베일 속에서 나 자신이 헌법 초안을 선택한다면, 자신이 최악의 경우에 처할 경우에 완전히 비참해지는 대안보다는 그런대로 견딜만한 대안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시민들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기회로서의 직업과 직위 자체가 희소해지는 근본 문제를 안고 있다. 거기에다가 더하여 경쟁과 경제지상주의를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원리로서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와 공정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사회의 구성 원리가 우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융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롤스의 정의 이론은 직업 간의 소득 균형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데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다.
    <문근찬 /한국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