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29)

     아카마스는 중상을 입었지만 살았다. 그러나 손두영은 살인미수자로 수배되어 워싱턴을 떠나야만 했다.

    나는 햄린 목사에게 부탁해서 조선 땅으로 떠나는 선교사 한스를 소개받았다. 마침 한스가 2월 중순에 조선으로 출발한다고 해서 그에게 손두영 집안의 편지와 돈을 맡기고 났더니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그러던 2월 하순, 기숙사에 있던 나는 늦은 밤에 전보를 받았다. 전보를 가져온 기숙사 사환이 떠났을 때 나는 눈을 비비고 등불에 전보를 읽었다. 필라델피아의 보이드 부인이 보낸 전보다.

    「태산이 심하게 아픕니다. 회충약 먹느라고 이틀째 단식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내가 시계를 보았다. 밤 11시 반이다. 이 시간에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차편이 있을 리가 없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내가 다음날 아침에 보이드 부인에게 태산의 상태를 묻는 전보를 치고는 떠날 차비를 했다. 그때가 2월 25일인 것 같다.

    회신을 기다리던 내가 역으로 떠나기 직전에 전보를 든 사환이 달려왔다. 보이드 부인이다.
    「태산이 위독합니다.」

    나는 어떻게 열차에 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주위의 학우들이 걱정했고 일부는 따라간다고 나섰지만 손을 저어 말린 것은 기억한다.

    내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날인 2월 26일 새벽 3시쯤 되었다. 보이드 부인댁으로 먼저 간 것은 태산의 병원을 알려는 것이었다. 머피 부인의 보육원인 웨스턴 홈에서 태산이 병원으로 옮겨졌다지만 어느 병원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시립병원에 있어요.」
    자지않고 기다리던 보이드 부인이 핼쓱해진 얼굴로 말했다.
    「리, 나하고 아침에 함께 갑시다.」
    「아니, 난 지금 갑니다.」

    현관에서 나는 앉지도 않고 돌아섰다. 내가 허청거리며 대기시킨 마차에 올랐을 때 보이드 부인이 숄만 걸치고 달려와 옆에 탔다.

    「리, 걱정하지 말아요. 아침 8시에 면회가 될테니까 차분하게...」
    「병원에서 면회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요.」
    내가 건성으로 말했더니 보이드 부인이 길게 숨을 뱉는다.
    「머피 부인이 태산이를 사랑해 주었어요. 아침에 태산이의 웃는 얼굴을 볼 수가 있을 겁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산의 병명은 디프테리아라고 했다. 미국의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다.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리타국에서 부모하고도 떨어져 외국 아이들과 섞여 지내는 태산을 떠올리면 자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세상에 이런 고아가 있겠는가? 말도 통하지 않는 땅에서 제 아비가 근처에 있는데도 한달에 한번 볼까 말까 했다. 더욱이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로는 두달 가깝게 만나지 못했다.

    나는 병원 대기실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자책감으로 울었다. 그놈이 아파 누워 있으면서 얼마나 애비를 찾았을까를 생각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보이드 부인은 나를 말리지 않고 울게 놔두었다.

    그렇게 8시가 되었을 때 면회 신청을 하고 온 보이드 부인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얼굴색이 환하게 풀려져 있다.
    「리, 태산이 퇴원했다는군요.」

    내 시선을 받은 보이드 부인이 말을 잇는다.
    「어제 저녁에 머피 부인한테 태산이를 인계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아서 머피 부인이 보육원으로 데려간 것 같네요. 우리가 머피 부인한테 먼저 갈 걸 잘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