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은 1904년 11월 스물아홉 살에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조지 워싱턴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거쳐 1908년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제28대 미국 대통령이 될 우드로 윌슨이 당시 총장이었다. 이승만은 "윌슨 총장과 그의 가족이 친밀한 친구가 되어주었고, 한국과 한국 선교에 대해 관심을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윌슨 가족은 이승만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벽난로 주위에서 정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승만은 1910년 국제법과 외교사를 다룬 논문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을 완성했다. 18세기 영국·스페인 등 유럽 해양 강국들이 전쟁 중 '국제 교역의 중립적 자유'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다뤘는지 살피고, 19세기 미국과 영국 사례를 분석한 논문이다. 윌슨이 졸업식에서 이승만에게 직접 박사학위를 줬다. 한국인 미국 박사 1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은 윌슨에게 "학비를 돌려달라"며 엉뚱한 농담을 던졌다. "국제법이란 강대국의 논리일 뿐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그런 것을 공부하라고 했으니 등록금을 돌려줘야 할 것 아니냐"고 해 사람들을 웃겼다. 이승만의 논문은 한반도 상황과 무관했지만, 우리 민족이 살 길은 국제법과 외교학에 능통해야 한다는 고뇌를 담은 것이었다.

    ▶이승만 박사학위 취득 100주년을 맞아 프린스턴대에 '이승만 홀'을 만들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프린스턴대 한국동문회가 엊그제 "건국 대통령의 흔적을 만들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모금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 중 김영삼 기념관은 지난 5월 거제시 생가 옆에 개관했고, 박정희·김대중 기념관도 국고보조금 174억원과 15억원을 각각 받아 추진된다. 이승만 기념사업에는 30억원이 배정됐지만 기념관 건립 논의는 없다. 백범기념관은 180억원을 들여 2002년 건립됐다. 이념 대립 때문에 건국 대통령을 홀대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승만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입장이 학계에서 늘어나고 있다. 말년에 독재를 했지만, "이승만이 4·19때 순탄하게 권력을 내놓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평가도 있다. 모교에 '이승만 홀'을 세우려는 모금 운동이 이왕이면 국내에서 건국 대통령을 기리는 캠페인의 불씨가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박해현 논설위원, 조선일보 2010. 9.14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