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오 경찰청장의 얘기를 새삼 꺼내는 이유는 그 전말에 이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무현 비자금 발언’은 검찰이 수사 중이고 ‘천안함 유족 비하발언’은 일단락됐다. 그런 만큼 두 가지는 재론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이 남아있다. 조 청장의 발언 중에는 불법시위에 대한 경찰의 유약한 대응을 비판한 대목이 있었다. 그의 발언중 이 부분도 이른바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부터 하려는 논의의 포인트는 ‘불법시위 대응 발언’이 어떤 자리에서의 발언이었는가 하는 점과 그 발언의 유출이 공조직의 성격과 관련해서 어떤 함의를 갖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경찰 간부집회에서의 발언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발언은 간부가 ‘조직내’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발언이 누군가에 의해 외부에 유출돼 조직논리가 아니라 사회감성적 차원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

    얼마 전부터 이 사회에서는 공조직의 원리와 윤리가 엄청난 위기에 접어들고 있다. 속말로‘우리끼리 얘긴데…’가 성립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서 좌익이나 출세지상주의자나 조직 내의 경쟁 상대들은 조직내부의 얘기들을 무차별 폭로해 버린다. 부당한 것이 폭로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내밀한 지시사항 마저도 더 이상 내밀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통신의 발달로 세상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80년대 나카소네(中曽根康弘) 전 일본총리가 지방의 어떤 좌석에서 ‘미국은 교육수준이 낮은 히스패닉과 흑인이 국가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일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편안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말한 내용이 전세계로 타전됐고 특히 미국 내부의 비난이 대단했다. 그는 한 국가의 수장으로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고 급속히 변화중인 지금 세상의 network에 둔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직 내부의 발언은 문제가 다르다. 그것이 국가의 공안, 보안기관에서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렀다. 이러한 기관의 성격상 그 수장은 부당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국가를 위해 필요한 지시를 공개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하달해야 할 필요가 수시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공조직의 원리가 파손되고 그 조직원이 조직윤리를 준수할 의사가 없는 지경이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런 지경에서는 위와 같은 기관의 상급자가 간부회의에서 어떤 지시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가 외부에 그 내용을 반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모 정권 때에는 한때 너무나 많은 은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야당에 새어나가는 통에 서면지시는 폐기하고 개별적 구두지시로 일관하는 실례가 있었다고 한다.

    민주화라고는 하지만 군이나 공안기관이 조직특성까지 유행처럼 민주화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군이나 공안기관의 일차적 책임은 민주사회를 보위하는데 있다. 또한 공안기관에게 민주화 잣대에 맞춰 과거를 몽땅 고백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그들이 한 일 중에는 특히 적대관계의 상대를 두고 행한 수많은 역공작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모두 꺼내놓고 공안기관의 원리나 윤리가 아닌 일반사회의 민주원리나 윤리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1930년대 중반 스페인 내전이 있었다. 당시는 사회주의가 유럽 지식인의 ‘종교’였다. 각국의 이른바 진보인사들이 인민전선에 가담했다. 앙드레 말로의 ‘희망’,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등이 그 소산이다. 세계의 진보여론은 모두 인민전선을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의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은 달랐다. 그는 스페인내전과 관련된 유럽의 정치정세와 미국의 안보관계를 예의분석 했다. 소련은 소위 ‘일국사회주의(一國社會主義)’에 진땀을 빼다보니 인민전선을 크게 돕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돕고자 했었다. 인접 프랑스는 인민전선에 동정적인 레옹 블룸의 좌익정권이었다. 영국의 유수대학은 공산주의 신봉자로 넘쳐났다. 내전이 끝난 뒤에 인민전선에 가담했던 미국의 진보청년들이 귀국했다. 후버는 이들을 평생 ‘감시’했다. 그렇다고 물리적인 탄압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철저하게 차단했다.
    후버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안기관의 고집이 궁극적으로 나라의 안보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공안기관은 다소 보수적인 것이 좋다고 본다. 말하자면 ‘경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얘기다.

    <김철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