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색 빼고 부작용 빼고 진짜 사회진화의 길로

     투자 개방형 병원의 허용 여부를 놓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사안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고는 하나, 일부에선 논쟁의 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투자개방형 병원의 허용을 의료산업의 민영화와 동일시하는 경우이다. 의료 민영화란 말 그대로 현재 국민건강보험에서 맡고 있는 의료복지 관련 보험 행위를 민영 회사가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민영회사들은 회사의 이익 증대를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만약 의료민영화가 실행될 경우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점이 한국에서도 야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투자 개방형 병원의 허용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일시하여 무조건적인 반대를 이끌어내려는 악의적 포퓰리즘은 반드시 지양해야한다. 논쟁 주제의 핵심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찬반의 입장을 밝히기에 선행되어야함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최근  한선진화포럼이 ‘서비스 산업 선진화와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개최한 47차 월례토론회에서 인제대 이기효 보건대학원장은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의료계의 투자 개방이란 개인 의료인, 혹은 비영리법인으로 한정되어 있는 의료 시장 진입을 일반인 및 기업에게로 확대하여 재원의 조달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특정인에게만 제한된 의료 시장 진입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허용한다는 것이 투자 개방형 병원 허용의 취지이다. 이를 통해 의료 시장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막대한 외부 투자재원을 공급받음으로써 풍부한 자본력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곧 의학계의 우수한 인적, 물적, 기술 자원의 개발로 이어질 것이고, 한국은 의료 선진국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투자 개방형 병원의 허용 여부는 단순히 의학 분야의 기술력 제고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수명이 증가하고 삶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단순한 질병 치료가 아닌 다양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의료 시장의 개방을 통한 자본의 유입은 이러한 국내 환자의 요구에 대한 대응성을 강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해외 환자의 요구까지 충족시킴으로써 해외 자본 유치도 보다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본의 유입이 활발해지면 의료 시장 규모가 증가할 것이 자명하므로, 고용 창출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투자 개방형 병원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의 의료 선진화를 위해 허용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투자 개방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신중히 고려해보아야 한다. 의료 시장은 타 분야의 시장 경제와 구분되는 차이점을 갖고 있으므로, 무조건적인 자유 경쟁을 주장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의료 시장은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활한 작용이 힘든 대표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의료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시장 진입 자체도 매우 신중해야할뿐더러, 수요를 예측하기도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수요자와 공급자가 가지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주로 공급자에 의해 시장이 형성 · 유지되고, 수요자는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형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의료 시장의 배타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자칫 시장 실패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재벌 회사의 의료 분야 독과점적 지배가 있을 수 있다. 공룡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은 현재 한국 시장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선진화를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축임은 분명하나 그 밑의 하청업체들이나 관련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거대한 덩치에 눌려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의료 시장의 배타적인 특성을 고려해 볼 때, 대자본의 전투적인 의료 시장 진입은 타 분야보다 더욱 심각한 시장 실패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의료 선진화를 위해선 현재의 낡은 의료 체제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세계 경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규모와 질적 측면 모두 보다 발전된 형태의 시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자본의 활발한 유입이 요구되는데, 투자 개방형 병원이 그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도입에 앞서 시행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신중히 보완해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참여 정부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찬반 논쟁은 찬성 측이나 반대 측이나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고, 심지어 악의적으로 상대측을 공격하면서 무의미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한국이 선진화의 문턱에 와 있는 지금, 변화가 필요하다. 소모론적 싸움에서 벗어나 공동의 협력을 통해 투자 개방형 병원의 장단점을 올바로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건설적인 토론이 진행되길 기대해본다.

  • <강 태 규 / 한국선진화포럼 6기 홍보대사 / 연세대 화공생명공학부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