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학계의 대표 학자로 올해 초까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을 지내는 등 한일관계사 재정립에 힘을 쏟아온 조광(65)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31일 정년 퇴임한다.
    조 교수는 1969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고려대 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3년부터 28년간 고대 교수를 지냈으며, 4년 전 문과대학장 시절 전국 인문대학장의 '인문학의 위기' 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날 연구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그는 "여태껏 공부를 의무로 생각했는데 이제 선택사항으로 바뀌어,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학생들은 (내 연구에) 거침없는 영감을 준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게 없다 해도 그동안 연구가 습관화돼서 한두 편 논문을 더 쓸 수 있겠다"며 웃었다.
    올해 초까지 활동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와 관련해 그는 "원래 위원회의 목표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아니라 같은 점, 다른 점을 확인하는 데 있었다"며 "전쟁 책임을 인정한 독일과 프랑스 간 공동교과서가 나오는 데도 70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7년이 됐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 학계의 주류가 한일병합조약 등 각종 제국주의 침략 조약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조약 체결 단계부터 무효라는 게 한국의 입장인데 계속 현안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지난 5월과 8월 한일지식인선언을 발표할 때 각각 100여명과 540여명의 일본 지식인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한일병합조약의 무효 기점을 1948년 8월15일에서 조약 체결 당시로 앞당긴 성과가 있었다"며 "역사 대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강단을 떠나는 조 교수는 최근 중·고교 교육과정에서 역사 교육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는 점 등을 언급하며 인터뷰 내내 '인문학과 역사 교육의 위기'를 걱정했다.
    조 교수는 "이번에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위원 중 근현대사 전공자가 없는 것과, 수능개편으로 사회탐구 영역에서 한 과목만을 선택하도록 한 것은 대단히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고교에서 이전에는 역사 과목을 선택하는 비율이 10% 정도였을텐데 이제 거의 없다"며 "역사가 해방 이후 지금껏 교육과정에서 이렇게까지 소외당한 적이 없었다. 인문학과 역사 교육에서 해방 이후 지금이 가장 큰 위기다"라고 했다.
    조 교수는 "내 키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 키를 짐작해볼 수 있듯 우리 역사를 알아야 그게 기준이 돼서 세계를 이해한다. 역사 교육을 안 하는 건 기준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이런 인식 하에서 퇴임 후에도 위기에 놓여 있는 역사 교육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상당한 위기에 처한 중·고교의 인문학, 역사 교육 문제를 바로 잡는 데 일조하고 싶다. 글 쓸 기회나 말할 기회가 있다면 계속 하겠다"며 "학문적으로는 모두 한문으로 돼 있는 조선 후기 등 시대의 자료들을 주석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