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철 사건, 강호순 사건,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김수철 사건, 그리고 일명 부산도끼사건까지. 지난 수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범죄가 알려질 때마다 언론과 시민들은 “너희들은 우리가 준 세금 받아먹고선 대체 뭘 하고 있었냐”며 경찰 등 사법당국을 맹비난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범죄는 이미 있었는데 왜 새삼스레 호들갑을 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어차피 우리나라 경찰들은 범인 하나 제대로 잡지도 못할텐데….”라며 자기 가족부터 잘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경찰 관계자들은 자신들은 시민들의 생각처럼 그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라며 억울해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하소연했다. 이번 부산도끼사건 현장을 찾아 주변을 탐문하고,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하소연했던 점을 다시 확인했다. 바로 경찰 내부의 이상한 규정들이었다.

    인권직무규칙에 개인정보보호로 우범자 관리 못해

    노무현 정권 시절은 486운동권들이 권력의 핵심에 포진해 좌파 진영의 주장이 사회에 팽배했다는 점만 부각될 뿐 이들이 만든 제도가 서민들의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야기를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흉악범죄가 계속되는데도 치안당국이 속수무책인 것에도 이들의 영향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인권지상주의.’

    2005년 10월 4일 경찰청은 훈령 제461호를 발표했다. 제목은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이하 인권직무규칙)’. 훈령의 목표는 ‘경찰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점들이 눈에 띤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2조 용어 정의에서 ‘사회적 약자’ 속에 외국인, 신체-정신-육체-문화적 차이로 사회적 차별을 받는 자도 포함돼 있는 점,
    제3조 타 규칙과의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인권보호 업무와 관련해서는 이 규칙이 타 규칙에 우선한다. 다만 다른 규칙에서 명시적으로 이 규칙의 적용을 배제하는 경우는 예외’라는 점,
    제4조 인권보호 원칙에서 ‘경찰은 직무수행 시 인권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을 강조한 점, 경찰 인권위원회 및 인권센터에 대한 규정 중 ‘인권단체와의 협력’을 업무로 포함시킨 점,
    제54조 경찰의 무기사용에서 ‘경찰은 도주하는 상대방의 등 뒤에서는 가급적 위해를 가하는 무기사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제80조 사회적 약자 배려에서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유치장에서 한국인과 분리 수용해야 한다’는 점, 제85조 초상권 침해 금지에서 ‘경찰관서 내에서는 피의자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 등이 있다.

    즉 이 규정을 살펴보면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임산부나 노약자, 장애인을 보호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여기다 외국인 불법체류자나 범죄자, ‘사이코 패스’도 포함될 수 있는 ‘정신적 미약자’를 슬며시 끼워 넣어 그들을 ‘약자’에 포함시켰다.

    또한 규정 전반에서 경찰이 피의자들에게 심각한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라 하더라도 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원 공개도 못하도록 못 박고 있다. 여기다 흉악범죄가 일어났을 때마다 ‘가해자의 인권 보호’를 외치다 전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인권단체’와의 관계 설정은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다.

    이런 인권직무규칙이 우선시되다보니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상습 흉악범 또는 상습 성범죄자 등에 대한 신상정보를 함부로 볼 수가 없다. 이러다보니 일선 경찰서에서는 과거에 해오던 ‘우범자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인권직무규칙 상 상습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수사하거나 동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인권’으로 옭아맨 공권력

    주요 지방경찰청 관계자에서부터 일선 경찰에게까지 이 ‘인권복무규칙’에 대해 물어보면 그저 쓴웃음만 짓는다.

    “뭐,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요. 피의자가 정말 죽일 놈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인권’은 존중해야 하니까 그대로 할 뿐입니다.”

    이 복무규칙이 경찰청장의 훈령인 관계로 만약 수사 중 규정을 어기거나 피의자가 앙심을 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게 되면 담당 경찰은 대부분 불이익을 받게 된다. 때문에 경찰조차 피의자를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복무규칙은 흉악범 수사뿐만 아니라 시위진압, 외국인 범죄자 체포 등 모든 직무에서 적용되는 탓에 경찰들은 시민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이 상할 일은 되도록 피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한다. 실제 흉악범을 격투 끝에 잡아도 그 범인의 심성이 비뚤어진 자거나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일 경우에는 인권위 진정으로 담당 경찰을 괴롭힐 수도 있고, 만약 범인이 돈 많은 자일 경우에는 ‘인권 변호사’를 선임해 담당 경찰을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도주하는 범인 뒤에서는 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규정 때문에 흉기를 든 범인을 필사적으로 뒤쫓거나 대치하는 일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범인이 칼을 들고 덤빌 경우 권총 등 그보다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거나 도주하는 범인 뒤에서 무기를 사용할 경우 자칫하면 직무규칙 위반으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그 범인이 외국인일 경우에는 잘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가해자 인권 보호가 정의인가

    물론 우리나라 경찰 내부의 조직문화를 보면 이 같은 ‘인권직무규칙’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23일 양천경찰서 강력반 경관 4명이 피의자를 고문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어 이 같은 주장이 옳다는 걸 뒷받침하기도 한다.

    하지만 치안 ‘소비자’는 ‘인권단체’만 있는 게 아니다. ‘진짜 소비자’인 대다수 시민들이 경찰에게 바라는 건 ‘철저하고 공정한 법 집행’이지 맹목적인 ‘피해자 인권 보호’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난 정권 시절 연쇄살인범들에게 마스크와 모자를 씌우고선 ‘초상권 보호’를 명목으로 그 얼굴과 신원을 철저히 숨기고, 한 연쇄살인범이 경찰서 정문에서 나올 때 분노한 유가족이 달려들자 그 옆에 있던 경찰이 유가족에게 발길질을 했던 사건에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었다. 이때 많은 이들은 흉악범의 얼굴과 본명은 물론 신상정보까지 공개하는 미국과 일본 등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현재 경찰 예산으로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철저한 과학수사가 어렵기에 ‘인권’을 최우선으로 할 경우 범죄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문확인이나 DNA 검사 등을 의뢰하면 최소 2주 이상 걸리는 것도 모두 이런 예산 문제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복수의 경찰 관계자는 ‘인권직무규칙’을 계속 준수하며 시민들로부터 계속 불신 받고 외면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집단적으로 상부에 건의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인지로 고민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