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⑤  

     「아니, 여긴 왠일입니까?」
    놀란 내가 영어로 물었다가 아차, 했다. 하루코는 조선말에 유창한 것이다.
    아니, 조선말의 원조인 백제인이라고 하는게 낫겠다.

    기숙사 현관 앞에 서있는 하루코를 본 순간에 나는 당황했던 것 같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루코가 웃음 띤 얼굴로 조선말을 썼다.
    「필요하신 물품을 좀 가져왔어요.」
    그러고 보니 하루코는 한 손에 꽤 큰 가방을 들었다.

    하루코가 가방을 들어 보이면서 웃는다.
    「이거 방으로 가져 가셔야 되는데요. 제가 다시 가져갈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 상황에서 사양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가방을 건네받았다.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여긴 어떻게 아셨습니까?」
    발을 떼며 묻자 하루코가 따라 걸으며 대답했다.
    「신학기에 편입한 조선 유학생을 찾으니까 금방 알려주던데요.」

    기숙사 복도를 걷는 우리 둘에게 지나던 학생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일본인, 중국인, 필리핀 등 동양 유학생은 더 유심히 우리를 보았다.

    방으로 들어 선 내가 예의상 방문을 조금 열어 놓았더니 하루코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는 문으로 다가가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이선생님을 믿으니까요.」

    「무엇이 이렇게 많습니까?」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묻자 하루코가 다가와 내용물을 꺼내었다.

    내용물이 책상 위에 쌓이는 동안 나는 눈만 끔벅이며 입을 열지 못했다. 수건과 내복, 양말에다 외출용 셔츠와 바지가 각각 두벌씩, 그리고 구두도 두켤레나 있었는데 내 발 치수와 맞는 것 같다.

    이윽고 가방이 비워졌을 때 하루코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아버님이 선생님 발 칫수는 아버님과 같다고 하셨는데 맞는가 보세요.」
    「맞는 것 같습니다.」

    겨우 그렇게 말한 내가 마침내 정색하고 하루코에게 물었다.
    「아버님이 보내신 겁니까?」
    「준비는 제가 다 했어요.」

    그러더니 하루코가 그때서야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묻는다.
    「혼자 쓰세요?」
    「예, 지금은.」

    그리고는 내가 하루코에게 의자를 권했다. 아직도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공부 하시는 것이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아버지가 말씀 하시더군요.」

    그렇게 내 말을 받은 하루코가 다시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죠.」
    「하루코씨는 전공이 무엇입니까?」
    「영문학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코가 술술 말했다.
    「부전공은 동양문화사구요.」

    그러자 조금 진정이 된 내 가슴이 차츰 무거워졌다. 일본대사관의 영사 아카마쓰 다케오는 조선인 담당이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김윤정과 함께 독립협회장 그 수하 한명을 암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함께 배를 탔다는 인연 하나로 이런 호의를 베푼단 말인가?

    그때 하루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대한제국 왕자께서 어제 학교를 그만 두셨더군요. 알고 계시죠?」
    내 시선을 받은 하루코가 다시 눈웃음을 쳤다.
    「저하고 같은 로노크 대학에 다니고 계셨거든요. 아주 인기가 많으셨지요.」

    결국 의친왕은 미국을 떠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