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②  

     「리, 내 대학으로 오게.」
    니덤이 창밖의 교정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조지 워싱턴 대학의 총장실 안이다.
    니덤이 말을 잇는다.
    「그대는 영어 실력이 뛰어나니 1학년 월반을 해서 2학년으로 편입을 시켜주겠네.」
    찰스 니덤은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법률 고문이자 조지 워싱턴 대학의 총장이다.

    내가 니덤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아직 헤이 장관도 만나지 못한 상황이라.」
    「먼저 입학 절차부터 받게.」

    니덤이 앞에 놓인 서류를 내 쪽으로 밀어 놓으면서 말했다.
    「입학 하고나서 만나도 되지 않겠나? 밀서를 전하고 곧장 돌아갈 것도 아니지 않나?」

    맞는 말이었고 고마운 배려였으므로 나는 펜을 들었다. 장학생으로 추천되어 전액 무료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니 나 같은 가난한 학생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사인을 마친 서류를 받아 든 니덤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내 학생 중에 동양인 인재가 하나 늘었군.」
    「가난한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늦게 인사를 했더니 니덤이 주름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대한제국이 제 기능을 찾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공부하게.」
    「기능을 찾도록 할 것입니다.」
    내가 대뜸 말했을 때 니덤이 나에게로 시선을 준 채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기다리지 않고 이끌어 가겠다는 자세로군. 그렇게 해야지.」

    2월 초순이다.
    입학 수속을 마치고 햄린 목사댁에 갔더니 저녁 무렵에 영친왕 이강이 찾아왔다.
    이강의 뒤를 경호원처럼 김일국이 따르고 있다. 햄린이 자리를 피해주었으므로 우리 셋은 응접실에 둘러앉았다.

    「이공, 아카마쓰가 백제계라고 해서 대한제국에 호의적일 리만은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이강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떠올라 있다.
    「오히려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왕조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강은 나에게 경고를 해주려고 온 것이다. 맞는 말이었으므로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임란 때 넘어간 조선 백성 중에서도 조선 왕조에 반발한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극심한 반상 차별의 조선 사회에 반발하여 향도가 되어서 왜군의 앞잡이 노릇을 한 조선인도 많았던 것이다.

    그때 이강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황제께서 자꾸 나에게 귀국을 종용하시니 곧 떠나야 할 것 같소.」
    그리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되면 내 감시 목적으로 임명된 대리공사 신태무도 귀국 해야겠지.」
    「그럼 김윤정이 대리공사가 됩니까?」
    「이미 일본놈들과 합의가 되어있는 것 같소. 약삭빠른 인간이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김윤정은 작년에 미국 추천으로 공사관 서기생이 되었으니까 1년도 안되어서 파격 승진을 하는 셈이다.

    그때 이강이 말했다.
    「어쨌든 김윤정과 아카마쓰가 이공의 헤이 장관 면담을 돕는다니까 그것은 잘 된 일이오.」
    「저하, 귀국하셔도 될까요?」

    마침내 내가 불쑥 물었을 때 이강이 이만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설마 엄비가 자객을 보내 황제가 계신 앞마당에서 나를 치겠습니까? 그렇게 미치지는 않았을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