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날 오전, 메일을 열어 본 이동규는 병무청에서 입영 통보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빠르다. 날짜는 25일 후인 9월 15일. 이동규가 원했던 날이다.
    입영 시간과 장소, 준비물들을 꼼꼼하게 읽고 메모하는 이동규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유치원 입학 때부터 대학 3학년이 되도록 단 한번도 자의(自意)에 의한 선택이 없었던 것이다. 군 입대도 따지고 보면 남들도 다 가는 국민의 의무이긴 했지만 이동규 자신이 선택했다. 최영도처럼 돈 써서 빠질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이동규가 이층에서 내려왔을 때는 오전 11시 쯤 되었다.

    「너, 개학 언제야?」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는 맨 얼굴에 홈드레스를 입었다. 어젯밤 새벽 2시쯤 들어왔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에 있었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다.

    「아, 다음주.」
    해놓고 이동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개학하면 매일 거짓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군 입대 날짜까지 받아놓았다고 말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군에 보내지 않으려는 난리가 아니다. 그냥 대책 없이 당황해서 그러는 것이다.

    「밥 주까?」
    하고 주방에 있던 수원 아줌마가 물었다. 이 집에서는 밥 달라고 해야 준다. 괜히 밥 먹으라고 부르는 헛고생을 안한지 오래 되었다.

    「주세요.」

    소파에 앉은 이동규의 시선이 다시 어머니와 마주쳤다.
    맨 얼굴의 어머니는 나이 들어 보인다. 어머니가 스물여섯에 이동규를 낳았으니까 지금 마흔 여덟이다. 어머니 나이를 알려면 제 나이에 26만 더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가 50도 훨씬 넘게 보인다. 어머니의 늙은 얼굴을 보았더니 가슴이 갑자기 찡해졌으므로 이동규는 외면했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니 형은 한국 국적 포기했다더라. 괜히 갖고 있다가 군 입대라도 하라면 골치 아플테니까.」

    이동규가 머리만 조금 들었다가 내렸고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니 형이 머리가 좋고 현실적이지. 네 아버지를 닮았어.」
    「그럼 머리 나쁘고 비현실적인 나는 엄마 닮은겨?」
    「아니, 니가 어때서?」

    금방 눈을 치켜 뜬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가 그러디? 니가 머리가 나뻐? 니 형보다 나아.」
    「아, 그만.」

    손을 들어 보인 이동규가 무의식중에 벽시계를 보았다. 형 이동민이 오늘 점심 때 만나자고 한 것이다.

    이동규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근데 LA아들이 왜 날 보자고 하는겨?」

    이제 형 이동민은 LA아들이 되었다. 그 식으로 말한다면 이동규는 서울 아들이다.

    그러자 어머니가 신문을 내려놓았다. 얼굴이 어느덧 굳어져 있다.
    「네 아버지가 전할 이야기가 있는가보더라. 네 문제로 말야.」
    「글세. 이제와서 뭘 어쩌겠다고.」

    10년 전, 이동규가 12살 때 아버지는 형을 데리고 떠났다.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는데 그 후의 내막은 모른다. 5년 쯤 전부터는 전화통화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이동규가 머리를 들고 어머니를 보았다.
    「그 집, 돈 많다던데. 나한테 뭐 좀 나눠 줄라는거 아녀? 그렇다면 만날 용의가 있는데.」

    본심이 아닌 줄 안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