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호 총리 내정자는 경남지사를 역임하면서 공무원 노조 문제 등 여러 계기에 분명한 국가 정체성을 천명한 인물로 기억된다. 지켜봐야 하겠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는 그의 총리 내정을 기대를 가지고 주시하려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의 문제점은 그가 ‘정치’를 기피하고 혐오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통령직은 정치적 리더십을 방기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자리다. 여기서 ‘정치’란 물론 정상배들의 더러운 협잡질을 뜻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정당한 의미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건국의 이유와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대한 도전을 단호히 격퇴하겠다는 국가수호 투쟁을 뜻한다.
     이 투쟁은 불가피하게 대한민국 편과 반(反)대한민국 편을 가르는 첨예한 대치선을 만들게 되어 있다. 소통과 대화와 통합도 대한민국 편에 선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정당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의 차이도 대한민국 편 사이의 정책적 차이에 불과해야 한다. 대한민국 편을 떠나 있는 사람들과는 소통, 대화, 통합을 할 수가 없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그것이 우리 쪽의 조작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대체 무슨 소통과 대화와 통합이 가능한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중도’는 경제와 복지와 분배 분야에서는 있으려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행여 대한민국 편과 반(反)대한민국 편 사이의 ‘중간’ 이나 ‘불편부당’을 만에 하나라도 함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이 말을 부인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의 대북정책과 동맹외교가 지금까지 중대한 일탈을 보인 바는 없다. 그러나 그가 국내의 반(反)대한민국 분자들의 불법 무법 행패에 대해서는 ‘어딘가 겁먹은 듯 한’ 약세(弱勢)를 보인 점은 간과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나는 우파가 아니다. 나는 중도다”라고 호소해도, 그의 정치적 반대세력과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그를 절대로 봐주지 않으리란 점이다. 이런 그의 전의(戰意) 방기(放棄)는 그를 뽑아주지 않은 세력의 기(氣)만 살려주었고, 그를 뽑아준 세력의 배신감을 샀을 뿐이다.

      정치적 리더십은 통합의 기능과 투쟁의 측면을 동시에 포괄해야 한다. 다양한 대한민국 편들과는 광범위한 통합의 기능을 발휘해야 하고, 명백한 반(反)대한민국 편들에 대해서는 추상같은 투쟁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두 개의 당연한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을 열렬히 밀어 준 대한민국 편에 대해서는 냉대로, 자신을 ‘촛불’로 태워 죽이려 한 측에 대해서는 ‘아침이슬’과 일방적 구애(求愛)로 대하려 했다.
     그런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짐작할 수 없다. 다만, 김태호 총리 내정자 같은 '우파적 발언' 기록을 가진 인물을 기용한 것을 보면서 그가 대통령직의 반을 넘기는 시점에서 자신의 자리가 대치선의 어느 쪽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뒤늦게나마 알아차렸기를 바랄 뿐이다. ‘중도’는 경제정책일 수는 있어도, 천안함이 깨지느냐 안 깨지느냐 하는 가열한 한반도 이념전쟁의 지형(地形)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허구요 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