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⑰ 

     「형님, 어서 오십시오.」
    신흥우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은 로스엔젤리스, 나와 이중혁은 방금 로스엔젤리스에 도착한 것이다. 역으로 마중나온 신흥우는 내 친구 신긍우의 동생이며 한성감옥서에서도 같은 방을 썼고 감옥서 내 학당도 같이 운영했던 동지이며 동생인 것이다.

    신흥우는 나보다 1년 빠른 작년(1903)에 출옥하여 미국으로 온 다음 지금 남캘리포니아 의과대학 예과에 재학중이다.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형님.」
    가방을 받아 쥔 신흥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셔만 부인의 미션하우스로 가시지요.」
    「셔만 부인이라니?」

    내가 묻자 신흥우가 빙긋 웃는다.
    「예, 해리·C·셔만(Herry·C·sheman)의 부인 말씀입니다. 올 3월에 이곳에 미션하우스를 열었고 제가 일을 돕고 있지요. 형님이 오신다고 했더니 꼭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해리 셔만이 누구인가? 나는 셔만의 통역 부탁을 받고 따라 나섰다가 체포되었었다.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셔만은 나를 구하려고 동분서주 하던 중에 병으로 죽었다. 그 셔만의 부인이 로스엔젤리스에서 미션하우스를 개장한 것이다.

    미션하우스는 주로 조선인들을 숙박시키면서 전도 활동을 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신흥우가 학교를 다니면서 전도사 역할을 했다. 아담한 미션하우스에 들어서자 셔만 여사가 말했다.

    「리, 이곳에서 얼마든지 머무셔도 좋습니다.」
    우리를 방으로 안내한 셔만 여사가 말했다.
    「그리고 이곳은 숙박비를 받지 않습니다.」

    워싱턴까지 차비도 모자란 형편이어서 사양할 처지가 아니었다.
    남편과의 사연을 아는 셔먼 여사가 각별하게 대접해주는 바람에 우리는 긴장이 조금 풀렸다.
    방에 셋이 둘러 앉았을 때 신흥우가 입을 열었다.

    「형님, 하와이에서 동포들을 감격시키셨다는 소문이 이곳까지 들렸습니다. 형님은 하와이 조선 동포들의 우상이 되신 것 같습니다.」
    「동포들이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야.」

    쓴웃음을 지은 내가 말을 이었다.
    「동포들은 이끌어줄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내가 때맞춰 나타났을 뿐이야. 내가 잘나서가 아니지.」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신흥우가 길게 숨을 뱉는다.
    「이곳 로스엔젤리스에는 저마다 잘난 사람이 많아서 몇 명 안되는 동포들이 여러 단체로 쪼개져 있습니다. 조국이 망해가는 판국에 한덩어리로 뭉쳐도 부족한 상황인데 동포끼리 서로 원수가 되어있으니 큰일입니다.」

    미국 땅에 발을 딛은지 며칠밖에 안된 내가 나설 수는 없었지만 듣고나니 한심했다.
    어깨를 늘어뜨린 신흥우의 푸념이 이어졌다.

    「이곳에도 일본의 자금을 받고 조선인 단체를 서로 분열시키거나 정보를 팔아먹는 매국노들이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애국지사 두명이 피습을 당해 한사람이 죽었습니다.」
    「미국 땅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놀란 내가 물었더니 신흥우가 코웃음을 쳤다.
    「미국도 영국처럼 일본과 비밀협약을 맺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필리핀을 미국이 지배하는 것을 일본이 묵인해주는 댓가로 미국이 조선을 일본한테 넘겨주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