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⑤ 

     그동안 나는 상동(尙洞)교회 안에 주시경, 전덕기 등과 함께 상동청년학교(尙洞靑年學校)를 설립했는데 감옥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학당을 운영한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청년학교의 교장은 내가 맡았으며 박승규가 부교장, 전덕기는 성경 교사가 되었고 주시경은 국문 담당이었다.

    두 대신을 만난 다음날 오후, 청년학교 교무실에 박승규와 전덕기, 주시경까지 셋을 부른 내가 불쑥 말을 꺼내었다.
    「내가 미국에 가야할 것 같소.」

    놀란 셋이 먼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주시경이 묻는다.
    「아니, 형님. 갑자기 미국을 가시다니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선교사님들 추천을 받아서 대학 공부를 하려는 거요.」

    그러자 다시 셋이 시선을 마주치더니 이번에는 부교장 박승규가 물었다.
    「난데없는 말씀이나 대학 공부를 하신다니 반가운 일이요. 하지만 청년학교가 설립된지 열흘 밖에 되지 않았으니 일정을 조금 늦출 수 없습니까?」
    「내달 초에는 떠나야 될 것 같소.」
    「어허.」

    전덕기가 길게 탄식했다.
    「청년학교를 어렵게 설립만 해놓고 떠나시는구려. 궂은 일만 맡고 그 결실은 맛보지 못하시다니, 안타깝소.」

    이들도 말려서 될 일이 아닌 것을 아는 것 같다. 전덕기의 말마따나 학교는 설립이 되었으니 이제 큰 일은 넘긴 셈이다.

    이렇게 청년학교와 작별한 나는 그 이튿날 저녁까지 아내에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였다.
    민영환이 나 없는 동안의 생계는 돕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또 가장이 없는 살림을 꾸려가야만 한다.

    5년 7개월간의 감옥서 생활에 이어서 다시 석달 만에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내 말을 들으면 아내는 기가 막힐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 밤에 아내에게 미국행을 통보하듯이 말했다. 물론 대학공부를 하겠다는 이유를 붙였다.

    이윽고 내 말을 듣고 난 아내가 물었다.
    「얼마 동안이나 가 계십니까?」
    「일이년은 더 될 거요.」

    그것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어서 대충 그렇게 말했더니 아내가 커다랗게 숨을 뱉았다. 그리고는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하긴 이곳보다는 낫겠지요. 잡혀갈 걱정도 없겠고.」
    「살림은 민 대감과 한 대감댁에서 도와주신다고 했소.」
    「저하고 봉수가 뒤따라가면 안됩니까?」
    「그것은...」

    말을 삼킨 내가 물끄러미 아내를 보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평산 누님댁에 모신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을 따질 염치는 없다.

    다시 아내가 말을 이었다.
    「누가 그러던데 하와이로 이민 간 조선인들이 매일 쌀밥에 고기를 먹고 어떤이는 돈을 벌어서 종을 다섯이나 두었답니다. 나도 미국에서 호강하며 살고 싶소.」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 것은 재작년 말(1902.12.22)이었다. 그리고 올해인 1904년에는 3천명이 넘는 조선인이 하와이로 떠난 것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여비도 넉넉지 못해서 고생을 각오하고 가는 거요. 기반이 잡히면 연락을 하리다.」

    애국도 좋고 계몽도 좋지만 제 식구 팽개치고 다른 사람 위한답시고 나대는 위인을 보면 마치 제 밑은 닦지도 못한 미친놈 같지 않겠는가? 나는 차마 아버지까지 부탁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평산 누님한테 가기 전에 들러서 부탁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를 다시 뵐 수는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