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행의) 상처는 죽을 때까지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그렇지만 남보다 몇 배로 액땜했으니 나는 잘살 거라 생각해요"
    지난해 봄 퇴근길에 괴한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한 김미희(30·여·가명)씨.
    '낙태하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작년 12월에 딸을 출산한 김씨는 5일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당시 주위가 깜깜했던 것과 범인이 덩치가 크고 냄새가 심하게 났던 것만 기억난다"고 그때 일을 설명하면서 "경황이 없어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임신 6개월째에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도 이웃으로부터 성폭행당한 적이 있었기에 또다시 겪은 엄청난 일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두 달 넘게 아무것도 못한 채 울기만 하다가 자살할 생각까지 했던 김씨가 기운을 차리게 된 건 아이라도 살려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애초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내려던 김씨는 출산할 때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딸을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열한 시간 넘게 진통이 이어져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서 '엄마랑 같이 살래?'하고 속으로 물었어요. 그제서야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했죠. 아이에게 아버지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네가 어떻게 왔든 (너는) 엄마에게 희망을 준 딸이라고 말해줄 겁니다"
    하지만 김씨가 지난 7개월간 혼자서 아이를 돌본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부모와는 이전부터 연락이 끊긴 상태라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설상가상 성폭행의 충격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 외부 활동도 힘들어졌다.
    인근 교회의 도움과 턱없이 부족한 정부 지원만으로 하루하루 살아야 했던 김씨는 임신 기간에 전 집주인에게서 임대 보증금을 떼이는 사기까지 당했다.
    현재 집 근처 유치원 주방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계를 잇는 김씨는 "한부모 가정 양육비로 한 달에 고작 5만원을 지원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최근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어린이 대상 성범죄에 대해서는 "나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런 김씨에게도 온정의 손길은 있었다. 사회복지단체인 '함께하는 사랑밭'을 통해 김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아픈 상처를 공유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시민의 후원이 쏟아지고 있는 것.
    5월10일에 온라인 모금을 시작했는데 지난 2일 오후까지 온라인에서만 226명한테서 930만여원이 모여 목표액을 두 배가량 넘겼다. 이 돈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김씨와 아이의 생활비로 쓰일 예정이다.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못 할 것 같은데 김씨는 해냈다" 등 격려의 글을 남기면서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한 돌잔치 업체에서는 아이에게 전통 돌잔치를 열어주겠다고 제안했고, 어린이 의류업체 대표가 원피스 등 아이 옷 세 벌을 보내오기도 했다.
    떡볶이 가게를 열 계획을 세워둔 김씨는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도와주신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며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9일까지 이 기관 홈페이지(www.withgo.or.kr)에서 후원 신청을 할 수 있고 이후에도 전화 문의(☎ 02-2612-4400)를 통해 김씨를 도울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