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②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을 딛는 것 같습니다.」
    하고 아내가 말했을 때 나는 퍼뜩 시선을 들었다가 곧 내렸다.

    깊은 밤이다. 오늘도 늦게 들어온 나는 마악 옷을 벗고 앉은 참이었다.
    윗목에 앉은 아내가 말을 잇는다.
    「감옥서에 계신동안 여러분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나오시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었지요. 그런데 더 하십니다 그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긴 숨이 뱉아졌다.
    집안일은 모두 아내에게 맡긴 채 개화운동을 한답시고 떠돌다가 6년 가깝게 감옥서에 박혀 있다가 나왔다. 전생의 원수가 환생한 것 같았을 것이다.

    아내가 말을 잇는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럭저럭 사는데 혼자서 왜 그러십니까? 오늘 낮에도 일본군 헌병이 세명이나 집에 들어와 묻고 갔습니다.」

    작심한 듯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가 제국신문에 글을 쓰는 이승만씨 집이냐면서 둘러보았는데 나는 잡아가는 줄 알고서 대답도 못했지요.」
    「......」
    「헌병 오장이란 자가 누군지 밝히지도 않은 채 다녀갔다고만 전하라고 하더군요.」

    나는 어금니를 문 채 이번에는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놈들은 위협을 하고 간 것이다. 같이 출옥한 제국신문 사장 이종일의 부탁으로 나는 제국신문에 논설을 발표하고 있다.

    그때 내가 말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이제 두 다리 좀 뻗고 삽시다.」

    아내가 말을 잘랐다. 눈을 치켜뜬 아내가 똑바로 나를 보았다.
    「그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은 짓은 제발 그만 두고 처자식 좀 생각해 주시오.」

    어금니를 문 내가 시선을 내렸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짓이라는 말도 맞다.

    아내의 말이 이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내가 비록 무식하지만 봉수를 위해서라도 어떻게 하실 것인지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빠져 나갈 수는 없겠다.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내 활동은커녕 마음 속 생각도 아내에게 말해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무시한 것은 아니다. 내 행동에 대한 신념은 품고 있었지만 미래는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내 미래는 곧 가정의 미래 아닌가?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가족에게 무책임 했고 불성실 했소. 그것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못할 사실이오.」

    내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는 시국을 논하고 애국을 주장한다고 해도 아내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것이 현실이다.
    부부가 부창부수(夫唱婦隨)하여 나아간다는 말은 허구다.

    어깨를 편 내가 아내를 똑바로 보았다. 오늘은 진심을 말해야 한다.
    「난 계속할거요. 조선 민중을 계몽하고 체제를 개혁하여 조선 민족의 새 나라를 세운다는 의지는 오히려 점점 더 굳어지고 있소.」

    아내가 머리를 돌렸으므로 내 가슴은 내려앉았다. 그러나 나는 말을 이었다.
    「감옥서 안에서도 허송 세월로 보내지는 않았지만 당신에 대한 죄책감은 점점 엷어져 간 것이 사실이오.」

    나는 선동가(煽動家) 기질이 있다. 대중 앞에서 힘찬 열변을 토해낼때는 온몸에서 솟아나는 기력을 느낀다. 그러나 오늘밤은 무기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집중한 적도 드물었다.

    내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평온한 생(生)을 살지는 못할 것 같소. 당신이 원하는 지아비 노릇은 못할 것 같다는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