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번째 Lucy 이야기 ② 

     오늘은 쉬는 날이다.
    그래서 나는 여유 있는 태도로 소파에서 고지훈과 마주보며 앉아있다.
    바쁜 일도 없기 때문에 전(前)대통령 국민장인 내일까지 쉴 작정이었다.

    방 안에서 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내가 고지훈에게 물었다.
    물론 나는 한국어를 모르니 영어로 묻는다.
     
    「고지훈씨는 조상에 대해서 잘 아세요?」
    그러자 고지훈이 빙그레 웃었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형님이 말씀하시던데 루시양은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조상을 물으시는군요.」

    고지훈의 영어는 유창했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이 많다. 테드가 그렇고 고영훈, 그리고 첫날 안내를 맡았던 사내까지. 이승만도 영어를 잘 했었지. 배재학당 졸업생 대표로 영어 연설을 했지 않은가?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코리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어요.」
    「내 조상은 3백년쯤 전에 군수를 지낸 할아버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족보라고 가계도가 전해져 오는데 그 분이 가장 출세한 분이시죠.」

    그러더니 고지훈이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요즘은 족보를 내세우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랬다간 웃음꺼리가 되죠.」
    「1백년쯤 전의 조상은 뭘 하셨죠? 조선조 말기에 말예요. 그리고 일본 식민지 기간에는요?」

    내가 묻자 고지훈이 눈을 크게 떴다.
    「잘 아시는군요. 루시양.」
    「여기 와서 배웠어요.」
    「내 증조할아버지께서 일본군에 징용으로 끌려가 필리핀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선 국민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으니까요.」
    「그렇군요.」
    「난 조상 중에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 있나 기대하고 찾아보았지만 없더군요.」
    「독립운동요?」
    「예. 일본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유공자로 추대되고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거든요.」

    나는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고지훈은 솔직한 성격인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성품에 호감이 간다.

    고지훈이 말을 이었다.
    「코리아는 일본이 항복한 후에 38도선을 경계로 러시아와 미국이 주둔하는 북한과 남한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고지훈이 길게 숨을 뱉았다.
    「일본이 패망하는 바람에 식민지를 벗어난 것이죠. 그래서 러시아, 미국이 진주하고 신탁통치 결정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신탁통치라뇨?」
    「코리아가 자주적으로 국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고 보였겠지요.」
    「......」
    「그 신탁통치를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고 코리아의 독립을 성취시킨 분이 이승만입니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탁통치를 찬성했어요. 러시아의 지시를 받은 것이죠. 이건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지훈은 내가 묻지 않았어도 이승만시대 전후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이해가 쉽도록 말해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학생을 가르치면 명강의가 될 것 같다.

    고지훈이 말을 이었다.
    「루시양은 그동안 어떤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그리고는 정색하고 나를 보았다.
    「이 곳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집단은 반역 집단이나 같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경우를 용납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