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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엔 늘 생생한 생화(生花)가 놓여있다.
한국전쟁 60년을 맞는 25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꽃은 싱그러운 향기를 내뿜으며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그리고 그 화환엔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산화한 미군들을 기리는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들로부터." -
- ▲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관을 찾은 미국인들에게 현운종씨가 태극기를 나눠주며 미국이 6·25전쟁에 참전한 데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 조선일보 제공
지난해 8월부터 놓이기 시작한 이 화환은 서울대 상대 17회 동기생(59학번 동창회)들이 정성을 모은 것이다. 1년에 1만 달러(약 1200만원) 정도를 모금해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에 사는 현운종씨와 부인 조미나씨에게 보내면 현씨 부부가 3~4일 간격으로 꽃을 가져다 놓는다.
“나라 이름도 생소한 이국에 와서 목숨을 바친 이들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헌화를 제안한 배창모 금융투자인회 회장(전 한국증권업협회 회장)은 “그나마 전쟁을 경험한 우리 세대들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헌화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배 회장에게 6.25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다. -
- ▲ 배창모 회장 ⓒ 뉴데일리
해서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있지만 남달리 절절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6년 남미를 배로 여행할 때였어요. 우연히 선내 행사에 동석하게 된 미국인 노신사가 제게 ‘한국인이냐’고 물었습니다.”
노신사는 배 회장이 한국인임을 확인한 뒤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6.25 당시 흥남부두 철수작전 책임자였던 에드워드 포니(Edward Forney) 대령이었다.
“나는 흥남에서 피란민 10만여 명을 구출하기 위해 많은 내 부하들을 희생해야 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배 무게를 줄이려고 탱크며 대포 등 생명 같은 무기들을 바다에 던지기까지 했다. 피난민을 구하기 위해 알몬드 장군을 설득한 것도 나였다.”
놀라운 만남이었다. 포니 대령은 이어 화가 난 표정으로 배 회장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요즘 나는 내 부하들의 희생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정말 한국은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할 것인가?“
배 회장은 너무 부끄러워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좌파 단체들이 인천에 있는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하며 폭력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언론을 통해 미국에도 알려졌다.
배 회장은 "한국인 전체가 은혜도 모르는 형편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지난해 6월 미국 뉴욕 맨해튼 배터리파크를 방문했다가 다시 충격을 받았다. 공원 안에 세워진 6·25전쟁 참전비 앞에 꽃다발 하나 놓여 있지 않았던 것.
그는 귀국 후 서울 상대 17회 동기들 모임인 '17포럼' 멤버들에게 이 얘기를 전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김승만 한테크 회장, 김항덕 중부도시가스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선뜻 찬성했다.
배 회장은 버지니아주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용산고 동창인 현씨에게 연락을 했고 통계학 박사로 교수와 미국 연방 공무원을 지낸 현씨는 흔쾌히 헌화를 책임지기로 했다. 표지판 글은 서울 상대 1년 선배인 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회 위원장이 지어줬다.
워싱턴 참전공원에 한국인의 헌화가 놓이자 미국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참전용사들을 꽃을 설치하는 현씨에게 '고맙다'고 말하기도 하고, 감격에 울기도 했다.
한 참전용사는 "한국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침몰한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이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배 회장은 지난 22일엔 한국전쟁에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금융투자업계의 원로들을 초청해 기념식을 갖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당시 전쟁의 참상에서 나라를 지켰던 지상훈 전 삼보증권 전무, 배종승 전 한국투자신탁 사장, 원국희 신영증권 회장 등을 비롯한 금융투자업계의 참전 원로 18명이 초청되어 공로패를 수여받았다.배 회장은 매주 일요일 대학로 동성고 강당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료로 진료하는 라파엘클리닉에도 참가하고 있다.
“필리핀이며 태국 근로자들은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운 참전용사들의 후손입니다. 이들의 건강을 돌보며 작은 보은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배 회장은 “한국을 도와 싸웠던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오래도록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가짐이 선진 국민의 도리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