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 직후 우리의 생활이었던 '반공' 정신이 새겨진 물건들
    ▲ 전쟁 직후 우리의 생활이었던 '반공' 정신이 새겨진 물건들

    “북괴도발 못막으면 자유잃고 노예된다”

    지금은 낯선 문구가 됐지만, 당시 반공법(反共法)에 의거한 ‘모든 상품’은 포장지에 반공을 강조하는 문구를 반드시 적어야만 했다.

    1961년 7월 3일 재정된 반공법은 공산계열의 활동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의 처벌에 관해 규정한 법률로 1980년 12월 31일 전면 개정된 국가보안법 부칙 제2조의 의해 폐지되기까지 반공은 우리의 ‘국시(國是)’로 활용됐다.

    루소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와 같았다. 북한 남침에 의한 6.25 발발 이후 반공은 우리네 생활 그 자체였다.

     

  • ▲ 6.25 전쟁 상황을 묘사한 당시 초등학생들의 그림
    ▲ 6.25 전쟁 상황을 묘사한 당시 초등학생들의 그림

    빨간색의 방첩함은 거리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반공화보’, ‘이것이 북한이다’ 등 수많은 정책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자와 라면봉지, 옷 가지, 놀이 할 것 없이 반공이란 단어는 결코 빠지는 법이 없었다.

    인사동 갤러리 떼의 ‘전쟁과 일상’ 전을 관람하던 김옥분(66)씨는 전쟁 직후, 당시 아이들이 그린 그림 앞에 멈춰서 아련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학교에서 늘 이런 그림만 그렸어, 이게 우리 일이었지. 그림도 그리고, 표어도 짓고. 정말 많이 했었는데….”라며 어린시절을 추억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련한 추억속의 풍경들인 것이다.

     

    "불온선전물 습득즉시 경찰관서에 신고합시다"

  • ▲ 방첩함과 통신보안이 적혀진 전화기, 반공서적, 공산군 삐라, 반공문구가 새겨진 연필(시계방향)
    ▲ 방첩함과 통신보안이 적혀진 전화기, 반공서적, 공산군 삐라, 반공문구가 새겨진 연필(시계방향)

    북한정책을 선전하는 삐라를 주워간 학생에게는 공책이 선물로 주어졌다. 이 공책 역시 반공이란 단어가 뚜렷히 적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쓰여진 연필 역시 눈에 띈다.

    반공교육은 학교 교육과정과 언론, 사회정책을 통해 다양한 방면에서 이뤄졌다. 이는 곧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됐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제3차 교육과정은 사회과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던 도덕과 독립된 교과로 ‘반공생활’이 하나의 영역으로 도덕교과 안에 들어왔다. ‘반공생활’의 일반목표는 ‘공산주의의 모순과 허구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민주주의의 우월함을 깨달아 공산주의 침략 분쇄의 결의를 굳게 하여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려는 국민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한다’ 였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반공소년 이승복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1968년 12월 9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에서 이승복 가족 4명이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알려지면서,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피해자인 이승복은 공산당에 항거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 ▲ 이승복 동상
    ▲ 이승복 동상

    그리고 이승복 기념관 및 기념비와 동상이 건립되면서 이승복 사건은 교과서, 라디오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이승복은 공산당의 잔인함을 알리는 하나의 상징으로으며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교정에서 반공이념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이는 불과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6월이 되면 반공 웅변대회와 글짓기 대회에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해 수많은 아이들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고, 글짓기를 통해 이승복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학교 운동장마다 굳건히 서 있던 반공소년. 그러나, 이제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신영수 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곧잘 보곤 했는데, 요즘에는 보존돼 있는 곳이 없다”라며 “고물상에 버려진 것을 발견해고 가져왔다. 이처럼 형태가 온전한 것은 특히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공소년 이승복은 그렇게 다른 반공정신이 깃들 물품들과 함께 역사속의 풍경으로 사라질 운명을 기다리는 존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