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동란 발발 60년이 흘렀다. 강산이 6번이나 변한 길고 긴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도 현충일마다 국립현충원에는 현층탑이 있고, 그 지하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이 넘는 참전용사들이 위패로 모셔져 있다. 시신을 찾지 못한 많은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멍울진 것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뿐만 아니다. 전투 중은 아니지만 후방 각지에서 공산치하에서 북한군과 좌익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 북한군이 후퇴한 후 각지 산악지방에서 활약하던 빨치산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후손들도 살아있다.

     

  • ▲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2006.5.18 공개한 러시아 소장 북한 영상기록물에 나오는 빨치산 대원들의 서울 입성 모습 ⓒ 연합뉴스
    ▲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2006.5.18 공개한 러시아 소장 북한 영상기록물에 나오는 빨치산 대원들의 서울 입성 모습 ⓒ 연합뉴스

    또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군경토벌대에 의해 사망한 빨치산들의 가족들도 아직 살아 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남아 있을까. 6.25동란 시 군경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유족들이 모인 전국피학살자유족회가 있다. 이 단체의 회가를 보자.

    “사나운 바람 불어 이 마음 쏘고 외치는 분노의 피 물결치면서 자장가도 구슬픈 추억이 아~ 새하얀 밤을 흐르고 있네. 가자, 대열아 피를 마시고 자라난 우리는 피학살자의 아들 딸이다”

    이러한 미움과 분노가 가득한 후손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뿌리는 현재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체제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반대한민국세력의 토양이 되고 있다.

    빨치산은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무장 공산세력이다. 그런데 빨치산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빨치산문화는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영화 등으로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고 있다. 지리산 등지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오로지 혁명과 조국(북한)을 위해 헌신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위장하는 것이다.

  • ▲ 소설가 조정래 ⓒ 연합뉴스
    ▲ 소설가 조정래 ⓒ 연합뉴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지금까지 1,000만권 이상 팔렸다고 한다. 6.25동란의 전설적 영웅 백선엽 장군의 수기인 ‘군과 나’가 조정래 태백산맥의 500분의 1 정도 밖에 팔리지 않고 있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1980년대 좌익운동권 붐의 도움을 받아 빅히트를 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것을 읽은 수백만의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빨치산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빨치산의 사상에 대한 비판의식이 무뎌진다. 자연스럽게 좌익세력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는 것이다.

    조정래는 소설로 번 많은 돈을 들여 조정래의 고향이자 ‘태박산맥’의 배경인 전남 보성군 벌교에 태백산맥 문학관을 만들었다. 문학관 건물도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통일염원을 담은 폭 80미터 정도의 거대한 벽화를 만들기도 했다. 제목은 ‘백두대간의 염원’.

    많은 관람객들이 이곳을 다녀간다. 남북통일을 염원한다. 그런데, 어떤 통일을 염원하는 것일까? 관람객들은 자유민주통일을 염원할지 몰라도, 그 기념관에 있는 통일의 깊은 의미는 북한식 통일인 것이다. 빨치산들이 험난한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북한과 왕래하던 그 염원 말이다.

    빨치산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는 빨치산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놓는다. 그동안 국민들 이미지 속에는 6.25동란 때 박힌 이미지 탓으로 빨치산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 같은 ‘빨갱이’ 이미지가 심어져 있다. 이것을 바꾸는데 소설과 영화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이들도 사랑의 감정이 있고 고향도 그리는 마음여린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표현해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러한 인간적인 주인공을 죽이려고 다가오는 토벌대는 없애야 할 원수인 것처럼 느껴진다. 남부군이라는 영화를 보던 학생들이 빨치산이 적들(군경 및 우익)에게 총을 쏘면 박수를 친다.

    지난 2006년 12월 6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전북 임실의 모 중학교의 한 도덕교사는 순창 회문산에서 열린 빨치산 추모제인 ‘남녁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 학생 180여명을 데리고 1박 2일 행사에 참여한 사례도 있다. 이들은 당시 빨치산 구호를 참석자들과 함께 제창하기도 했다.

    “제주국의 양키군대를 한 놈도 남김없이 섬멸하자. 미국과 이승만 괴뢰정부를 타도하자” 이 행사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이날 통일에 기여한 공로로 ‘통일광장’으로부터 표창장까지 받았다. 이날 참석했던 그 어린 학생들은 빨치산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심어지고 이들을 토벌한 대한민국 군과 경찰에 대해 증오감이 심어졌을 것이다.

    이날 중학생들을 빨치산 추모제에 인솔한 그 교사는 전교조 전북지부 통일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친북반미 인터넷카페를 운영하게 지도하고, 동료 전교조 교사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주체사상을 전파해 왔다고 한다.

    6.25동란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고, 1차 연평해전, 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사태 등에서 느꼈듯이 남북한간의 전쟁은 언제든지 재발 가능한 휴화산이다. 김일성이 1968년 11월 과학원 개발팀과의 담화시 언급한 내용을 살펴보자.

    “남조선에서 미국 놈들을 몰아내야 하겠는데, 그놈들은 절대로 그냥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젠가는 미국놈들과 다시 한 번 꼭 벌여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전쟁 준비를 다그쳐야 합니다. 동무들은 하루빨리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자체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 개발해야 합니다.

    또한, 김일성은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두 번 놓쳤습니다. 그 한번은 6.25이고 또 한 번은 4.19입니다. 6.25때에는 박헌영의 허위보고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됐고,  4.19 당시에는 연락부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서 놓쳐버렸습니다. 그때 내가 함경도 지방에서 현지지도 하던 도중에 4.19가 터졌다는 보고를 받고 평양으로 달려올 정도로 연락부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4.19는 남조선 혁명정세가 무르익은 징조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무들도 이런 각오를 가지고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춰야 하겠습니다.”

     

  • ▲ 소설가 조정래 ⓒ 연합뉴스

    ※ 본문은 현대사상연구회의 ‘6.25동란과 남한 좌익’(인영사, 2010)에서 발췌했다.

    현대사상연구회는 현대 주요 이데올로기들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상 갈등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자 및 전문가들의 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