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스한 햇살이 눈부신 6월 어느 날, 서울 인사동 한복판 통인가게 건너편 골목 안에 위치한 갤러리 ‘떼’를 찾았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유리로 된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6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 듯한 감각. 그곳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과거 우리네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 갤러리 떼 '전쟁과 일상'展 ⓒ 뉴데일리
    ▲ 갤러리 떼 '전쟁과 일상'展 ⓒ 뉴데일리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6.25전쟁 직후 시대의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양공주(洋公主)’의 모습.

    민족의 아픔이자 상처로 각인된 이들이 환한 미소로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어디서 이런 사진을 구한거지?’ 라는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넘치려는 순간,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사진 속에 계신 분들이 직접 보내 주셨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신영수 관장.

    현재 갤러리 ‘떼’에서 진행 중인 6.25전쟁 60주년 기획전 ‘전쟁과 일상’을 기획한 주인공이자, 이곳에 전시된 모든 물품들을 직접 모은 수장가(收藏家)다.

    고교시절부터 수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그는 우리나라의 민속품과 옛 기화, 무속 자료들을 하나 둘 헐값에 사들여 모으고 시작했고, 이는 어느새 ‘수집벽(收集癖)’이 되고 말았다.

    “당시에는 자료를 집에 들여놓지 않았었는데, 내 힘으로 수집을 할 수 있으면 박물관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70년대부터 모으기 시작한 자료들은 어느새 수장고를 가득 넘어, 1985년 박물관 레스토랑을 개업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당시에는 꽤 반응이 좋았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 ▲ 네팔 주민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신영수 관장 ⓒ 뉴데일리
    ▲ 네팔 주민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신영수 관장 ⓒ 뉴데일리

    이 무렵 그는 제주도 진성기 민속박물관과 충북 온양박물관을 돌아보고 “한국 민속품으로는 이 사람들 흉내도 못 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신 관장은 한국 유물을 정리하고, 동아시아로 눈길을 돌린다. 중국 개방 전에는 홍콩과 대만 등을 통해 조금씩 유물을 들여오고, 1992년 중국 개방과 함께 본격적인 수집에 나선다.

    1993년 히말라야 여행 중 그는 새로운 운명을 접한다. 바로, 티베트의 원색적인 색감에 큰 매력을 느끼고 그대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한국에 돌아와 2001년 티베트 박물관(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이어 2006년 실크로드 박물관(서울 종로구 삼청동)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한편, 당초 북촌 일대를 작은 규모의 박물관 명소로 만드는게 목표였던 그는 ‘성문화 박물관’과 ‘아름다운 차 박물관’등 몇 개를 운영해 봤지만 잘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누구나 볼 수 없는 자료, 갖고 있지 않은 자료를 창고에 쌓아두기는 아깝죠.”라고 말하는 그는 기증도 많이 했다.

  • ▲ 네팔 주민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신영수 관장 ⓒ 뉴데일리
    ▲ 네팔 주민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신영수 관장 ⓒ 뉴데일리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오로도스 청동기 유물 2,500점을 기증한데 이어, 2008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우리나라 민속복식자료와 80년대 에로영화 포스터 1,500점, 같은대 국립청주박물관에 인도 금속 문양 틀과 중국금속공예품 등 1100여점을 떠나 보냈다.

    또한, 지난해 말 국립중앙박물관에 인도 목제 문양 틀 500점을 추가로 기증했다.

    뿐만 아니라, 신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은 다른 기관의 기획 전시에 대여되기도 한다.

    포스코 미술관에서의 ‘총포 유물전’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차마고도의 삶과 예술’, 숙대 박물관에서의 ‘고대 섬유전’ 등이 그 것. 그의 대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전시였다.

    또한,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과 육군사관학교 박물관도 아시아의 총포를 신 관장만큼 많이 소장하고 있지 않다. 현재 전시 중인 전쟁 직후 반공(反共) 영화 들 역시, 그 정도의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 기관은 존재치 않는다.

    “아무리 귀한 유물이라도 쌓아두기만 하면 의미가 없어요. 많은 이들이 보고, 또 학술적으로 활용될 때 그 빛을 발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낀답니다.”

     

  • ▲ 김일성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실린 잡지 ⓒ 뉴데일리
    ▲ 김일성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실린 잡지 ⓒ 뉴데일리
     
  • ▲ 총알 탄피 등을 활용한 예술작품 ⓒ 뉴데일리
    ▲ 총알 탄피 등을 활용한 예술작품 ⓒ 뉴데일리
     
  • ▲ 미군 모포를 재활용한 생활용품 ⓒ 뉴데일리
    ▲ 미군 모포를 재활용한 생활용품 ⓒ 뉴데일리
     
  • ▲ 삐삐선으로 만든 장바구니 ⓒ 뉴데일리
    ▲ 삐삐선으로 만든 장바구니 ⓒ 뉴데일리
     
  • ▲ 6.25전에 참전했었던 Crawfodr William E. 의 유품 ⓒ 뉴데일리
    ▲ 6.25전에 참전했었던 Crawfodr William E. 의 유품 ⓒ 뉴데일리

    이번 전시는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해 마련됐다. “우리는 지금 풍족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당시에는 군수품을 활용해서 누구나 가난하게 살았어요. 그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당시를 사셨던 분들께는 향수를 전해드리고 요즘 세대에게는 그때의 상황을 알려주고 싶었죠”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에는 전쟁 때 쓰던 군사물품과 이를 재활용한 생활도구, 북한군 삐라, 중공군과 미군의 물품들이 전시중이다. 그간 전국을 여행다니며 직접 수집상과 고물상을 만나 300여점의 유물을 수집했다. 최근,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물건들을 찾아 나섰지만 90년대 까지는 간간히 보이던 것들이 그새 많이 사라졌다.

    "사라져 가는 물건에 유독 애착이 가요.”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버려지고 있는 유물들. 이제 우리 삶 속에 남아있는 역사의 기록이 얼마 되지 않는 것만 같아 자꾸만 가슴이 따끔거린다.

    앞으로의 전시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그에게 전시란 특별한 날을 위해 준비한 축제가 아닌, 언제나 함께 하는 동반자요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거예요. 일단, 다음 전시는 ‘내몽고’ 입니다. 우리 청동기 시대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시예요.” 뿐만 아니라, 올해의 계획은 이미 가득 차 있다. 매달 인사동 갤러리 ‘떼’ 에서는 그간 그가 집중적으로 수집해 온 세계의 고대문화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시물들의 모습을 선보인다.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6.25전쟁 직후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전쟁과 일상’ 전이 이번 달 말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간 어딘가에 묻혀졌던 우리의 기록이 이제사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다시금 창고 속으로 들어가게 될 상황에 처했다. 불과 사흘 밖에 남지 않았다 어디, 우리의 이 생생한 역사의 기록을 365일 전시해 둘 곳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