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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용 담요로 만든 바지를 입은 어린이와 큰 군화를 주워 신은 어린이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배를 뚜욱 내민 아이도, 주머니에 손을 찔려 넣은 채 이를 환하게 드러내 웃어 보이는 아이도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는 것을 몸에 두르고 있다.
전쟁 당시 공격적인 제스처로 포화 속을 뛰어다녔을 천 조각이 작고 여린 아이들과 만나 부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이 신랄할 정도의 현실감 있는 사진이 무겁거나 불편하지만은 않다. 이러한 이질적인 대면이 바로 우리 역사의 기록이요, 삶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리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 20대를 보낸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 떼에 들어서는 순간, 6.25 전쟁 당시의 생활사가 한 눈에 펼쳐진다. 바로, 당시 세대가 남겨놓은 생생한 삶의 증언이다.
◆ 버려진 담요와 군복이 우리 몸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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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용 담요로 만든 양말과 장갑, 그리고 토시
전시장에는 지긋한 전쟁의 흔적을 잊기 위해 버릴 법도 한 군(軍) 물자들이 가득하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었던 당시의 궁핍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가장 질 좋고 흔한 소비재가 바로 군 용품이었고, 일반인들의 생활에 널리 사용됐다.
미군들이 전시(戰時)에 사용한 뒤 버리고 떠난 낡은 담요 하나가 전쟁 직후 꽁꽁 언 우리네의 손과 발을 녹였다. 어머니가 가위로 듬성히 잘라낸 천 조각을 실과 바늘로 꼼꼼히 꿰매주면 온 가족이 금새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그보다 더 따뜻한 겨울나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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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용 천막을 재활용한 물품들 1. 전대 2. 돈 주머니 3. 낚시가방
옷감이 귀하던 시절 군복은 유용했다. 군복은 전후(戰後)에도 일상복으로 활용됐는데, 물을 들이면 멋쟁이 양복과 다름없었다.
군용 천막 천으로 전대와 낚시가방을 만들어 사용했다. 내부에 삐삐선을 넣어 소매치기를 방지한 군용천막으로 만든 전대. 그나마 사진과 같이 자크가 달려 있는 것은 꽤나 잘 만들어진 고급품이었다. 천을 덧대 겨우 입구를 막아 놓는 것이 흔히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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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 군화 밑창을 뜯어 덧댄 모루 방망이
또한, 대장간에서는 미군 군화 밑창을 뜯어 덧댄 모루 방망이를 휘두르며 작업하기도 했다.
고무 밑창 특유의 문양이 아직도 그대로다. 나무로 만들어진 몸통이 바닥과 충돌하며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더욱 오랜 시간 단단한 것을 마음껏 쳐낼 수 있었다.
◆ 군용 천막이 빛나는 예술의 혼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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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용 천막 천을 캔버스로 재활용해 그린 유화와 탄피를 모아 전쟁의 상흔을 표현한 조형물
군용 천막은 생활 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서도 한 몫 했다.
캔버스를 대신한 천막 위에 그려진 여인의 모습을 통해 긴장의 역사와 현실을 통한 이완(弛緩)의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50~60년대 에는 이렇듯 군용 천막을 사용한 그림들이 많았다. 특히, 극장에 걸린 영화 간판 대부분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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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용 드럼통 뚜껑으로 만든 교통 표지판
탄피를 모아 만든 전쟁의 상흔을 표현한 조형물 역시 눈에 띈다. 여전히 살아갔고, 기록했다. 그 시대가 언제든, 그 환경이 어떠했든. 서로 다른 세계의 하모니(hamony)가 절묘하다. 고단했던 당시의 삶 속에서 큰 위로가 됐으리라.
교통 표지판 역시 감쪽같다. 군용 드럼통을 오려내 정성껏 페인트를 칠한 뒤 거리에 세워놓고 썼던 것이다.
현재 한국의 간판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에도 못지 않은 손재주가 돋보인다.
‘아! 이것이야 말로 어둠의 길을 밝혀 앞으로 나아가게 한 힘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불연듯 스쳐갔다.
◆ 삐삐선은 변신의 귀재(鬼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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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용 전화선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볼 수 있었던 동대문시장 풍경
전시장에 나온 군용 전화선(일명 삐삐선)은 엮어 장바구니나 채반으로 만들어 썼다.
어느 집에나 하나씩 있을 만큼 흔한 물건이었다. 요즘, 그 어느 명품백이 부러우랴. 질기고 튼튼한 군용 전화선은 손재주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여인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제각각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소품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재활용 물품들은 '전쟁의 상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후반까지 우리 일상과 함께 해온 일종의 생활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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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용 전화선과 이를 이용해 만든 소품들
◆ 깡통 지붕, 그리고 경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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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제 사용된 캔으로 만든 지붕의 잔해
‘코카콜라’라는 글씨가 선명한 붉은 캔들은 실제, 철판 지붕으로 기와를 대신했던 것들이다. 전시에는 깡통으로 덮은 움막도 감지덕지였다. 깡통 하나하나를 망치로 두드려 편 다음 콜타르를 발라 사용했다.
실크로드 박물관 장혜선 관장은 “천장에 쥐가 다니는 바람에 시끄러워 막대로 철판 지붕을 툭 쳐내니 구멍이 뚫려 장마철 내내 비와 씨름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 바탕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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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 상자로 만든 가구와 다용도 자루로 변신한 밀가루 포대
‘미국 솔표 석유’란 글씨가 선명한 나무 상자로 만든 가구에는 깡통을 오려 만든 경첨을 달아 모양을 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미적인 부분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위에 미국 원조품으로 받은 밀가루 포대는 몇 개씩 덧대 다용도 자루로 변신했다. 포대에 추가로 기록된 미국 국민이 기증한 것, 팔거나 바꾸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또한, 군용 탄피띠는 넝마주이가 멘 넝마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어깨끈이 됐다. 군용 깡통에 구멍을 뚫어 만든 올챙이 국수 틀도 기가 막히다.
휘발유 스페어 통은 한 면을 오려 쌀을 퍼 담는 다용도 용기로 재활용했고, 군용 산소통을 잘라 만든 학교 종도 있었다.
"미국인들이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데 대해 한국인들은 감사하게 생각한다(Americans Died to Defend South Korean's Freedom. South Koreans say…THANK YOU AMERICA!)"
며칠 전 재미한인이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미군 파병을 통해 한국의 자유를 지켜준 미국에 감사하는 광고판을 애틀랜타 고속도로변에 설치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전시 뿐 아니라 전후에도 그 유품들이 남아 우리를 살게 했다.
6.25 전쟁 발발 60주년.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 삶 깊숙한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결코 빼낼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의 역사의식에서 가려졌던 모든 사실과 가치가 다시금 되살아 날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전시는 6월3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떼에서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