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6-21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100)

    인간의 목숨은 모질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연약하다.
    감옥소에서 엿새만에 콜레라 환자가 70여인으로 늘어났고 사흘째부터 시체가 실려 나갔다.

    감옥서 서장 이하 옥리들이 고군분투를 했지만 전염병을 막을 자 누가 있으랴.
    특히 옥리들은 환자들이 누워있는 감방으로의 출입을 꺼려했으므로 내가 동료들과 간병을 맡았다.

    에비슨이 신신당부를 했지만 내가 어찌 숨겠는가?
    명색이 민중을 계몽시킨다면서 큰소리를 치던 위인이 병든 민중을 피해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내 성품도 그렇다.

    「하느님, 이 불쌍한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숨이 끊어진 환자의 눈을 감기면서 나는 꼭 그렇게 하느님께 기도했으며
    「하느님, 부디 고통을 덜어주시고 낫게 해주십시오.」
    신음하는 환자의 몸을 쓸면서 그렇게 기도했다.

    모두 하느님의 뜻이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용기가 솟았다.
    하루에도 시체를 10여명이나 내보낼 때도 있었지만 나는 앞장서서 수습했고 환자와 침식을 함께 했다.

    내 행동에 충격을 받았는지 옥리들도 하나씩 둘씩 거들었으므로 차츰 감옥서 안은 정돈이 되어갔다. 물론 감옥서의 내 동료,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던 동지들 중에서 단 한명도 환자 간호에 주저하거나 피한 사람은 없다.

    이상재, 신흥우는 물론이고 양의종, 박용만까지 환자들과 같이 호흡했으며 간병을 도왔다.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린 이 역병이 가셨을 때 나는 하느님께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하루에 십여 명 목숨이 앞에서 쓰러질 때 죽는 자와 호흡을 상통하며 그 수족과 몸을 만져 곧 시신과 함께 섞여 지내었으되 홀로 무사히 넘기고 이런 기회를 당하여 복음 말씀을 가르치매 기쁨을 이기지 못하나이다. 이 험한 중에서 이 험한 괴질을 겪으며 무사히 목숨을 부지하게 됨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신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남은 환자가 둘, 그들도 쾌유되는 중이어서 역병과의 싸움이 끝났다고 믿었을 때 정기선이 쓰러졌다. 정기선은 18세, 배재학당을 다니다가 잡혀왔는데 아버지 정동규 대신으로 3년형을 사는 중이었다.

    정동규는 만민공동회 회원으로 조병식의 집에 폭탄을 던졌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러나 폭탄이 잘못 터져 정동규가 반신불수가 되는 바람에 조병식이 대신 아들 정기선을 잡아넣은 것이다. 그 정기선이 내 옆에서 환자 간병을 돕다가 마지막에 덜컥 쓰러져 버렸다.

    내가 기를 썼고 에비슨도 달려왔지만 그 다음날 저녁에 온몸이 마른 나무처럼 되어 누운 정기선이 옆에 앉은 나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선생님, 대한제국은 어떻게 될까요?」
    기름 등빛을 받은 정기선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수십 명 시체를 내 손으로 치웠고 그 중에 나하고 각별한 사람들도 있었는데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다. 내가 눈물을 쏟으면서 정기선을 내려다보았다.

    「그런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너는...」
    이를 악물었다가 푼 나는 말을 이었다.
    「너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행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고 네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에서 말이다.」

    그때 정기선이 눈을 감았고 주위에 둘러앉은 정치범 동료들도 제각기 숙연해졌다.
    내가 이제는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기선에게 소리쳐 말을 이었다.

    「넌 행복한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마음 놓고 잘 가거라.」

    다 하느님의 뜻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