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26)

     다음날 저녁 무렵, 내 전갈을 듣고 제중원 원장 에비슨이 달려왔다.
    전갈은 아침 일찍 보냈기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왜냐하면 하룻밤 사이에 설사병 환자가 열두 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안쪽 방에서 다섯, 그 옆방에서 셋이 늘어났다.

    환자를 진찰하고 나온 에비슨이 먼저 감옥서 서장 김영선과 밀담을 나누고 나서 곧 복도에 서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복도 기둥에 매단 등빛을 받은 에비슨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이보게, 미스터 리.」
    내 상투를 잘라준 에비슨이 오늘은 영어로 말했으므로 나는 긴장했다.

    「이 곳 환자들은 콜레라에 감염되었어. 지금 성 안에도 콜레라가 번지고 있네.」
    옆을 지나는 죄수들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에비슨은 목소리를 낮췄다.

    「콜레라는 물이나 음식으로 전염이 되는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야. 인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콜레라가 발생해서 수십만이 죽었다네.」
    「환자를 살릴 방법도 없습니까?」
    내가 물었더니 에비슨은 먼저 길게 한숨부터 뱉았다.

    「이곳 물은 어떻게 먹는가?」
    「안에 우물이 있습니다.」
    「감염이 되었을 텐데 야단났군.」

    그러더니 곧 차근차근 말했다.
    「서장한테도 말했지만 물은 끓여 먹도록 하게.」
    「예, 박사님.」
    「심한 설사에 몸의 수분이 다 빠져 나가서 체액과 염분의 손실이 커. 환자에게 소금물을 먹여야 하네.」
    「그러지요.」
    「환자 옆에 가지 않는 것이 낫네.」

    에비슨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잇는다.
    「치료는 옥리한테 맡기고 그대는 멀찍이 피해 있어야만 하네.」
    「박사님.」
    「그대는 앞으로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야.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하면 안 된단 말이네.」

    에비슨의 시선을 받은 내가 마침내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박사님.」
    「곧 이곳에서도 환자들이 죽어 나갈걸세. 이제 막 번지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환경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전염이 될 것이야.」

    감옥 안을 둘러보면서 에비슨이 나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이보게, 리. 이런 곳에서 짐승처럼 죽으면 안돼. 꼭 살아 나가서 조선을 위해 큰일을 해야만 하네.」
    「고맙습니다. 박사님.」

    갑자기 목이 메었으므로 나는 헛기침을 했다.

    에비슨이 돌아간 후에 감옥서 서장 김영선은 옥리들을 동원하여 감방을 정리했다.
    환자들은 안쪽 방으로 격리시켰으며 불결한 옷가지와 거적은 마당에 쌓아놓고 태웠다.

    나는 김영선의 호의로 가장 통풍이 잘 되는 문간방으로 옮겨졌는데 옥리들의 숙소 바로 옆이었다.

    「또 둘이 드러누웠어.」
    옥리가 말하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이거 야단났군. 저놈들한테서 괴질이 옮겠다.」
    다른 옥리의 목소리가 울렸고 또 하나가 말을 받는다.
    「이건 약도 없다는 괴질인데 우리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렇다. 하룻밤에 몇 동이가 되는 설사를 내쏟다가 지금 맨 먼저 드러누웠던 셋은 온몸이 뼈와 가죽만 남아있다. 조금 전에 가 보았더니 온 몸이 찬데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곧 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