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예상밖의 완승을 거두며 세계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반면, 아르헨티나와 가진 2차전에선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 참패를 당한 것에 대해 외신들은 일제히 허정무 감독의 '전술 실패'를 요인으로 지목했다.

    타임 워너 소속의 미국의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SI)는 경기 직후 "한국의 허정무 감독이 판단 미스를 했다"며 "이날 한국의 패배는 허정무 감독이 잘못된 전략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하면서 벌어진 결과"라고 혹평했다.

    ◇수비 지향 플레이, 경기 주도권 스스로 내줘

  • ▲ 18일 오후(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루스텐버그 올림피아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대표팀 회복훈련에서 허정무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18일 오후(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루스텐버그 올림피아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대표팀 회복훈련에서 허정무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SI는 허정무 감독이 저지른 여러 실수 중 지나치게 수비에 치중한 점을 지적했다.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날카로운 공격력을 발휘했던 한국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스스로 예봉을 무디게 해 다양한 득점 기회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것.

    이는 선수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국 대표팀의 미드필더로 출전, 이날 한 골을 기록한 이청용은 수비에 치중한 것이 경기를 어렵게 만든 한 요인이었다면서 상대를 쫓아가는 플레이를 하다보니 더욱 힘들었다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박지성의 '절친' 테베스도 "한국이 그리스전에서 보여줬던 공격력을 전혀 선보이지 않아 놀라웠다"며 "그 덕분에 우리는 재미있게 경기를 풀어 갈 수 있었다"고 승리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SI는 허정무 감독이 애당초 수비위주의 전술을 펼치기 위해 그리스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차두리를 빼고 대신 오범석을 집어넣은 것이 패착이라고 풀이했다.

    SI는 "새로 투입된 오범석은 오히려 수비에서 실수를 범하며 잇따라 파울을 범해 결국 골을 허용했다"며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오범석으로 하여금 쉽게 파울을 얻어냈다"고 밝혔다. 개인전술이 약한 오범석을 차두리 대신 출전시킴으로써 수비와 공격 양면에서 모두 상대에게 허점을 노출시키는 우를 범했다는 분석이다.

    ◇박지성 '측면 공격수'로 활용, 아르헨 우측 노렸어야

    미드필더 박지성을 중앙 공격수로 기용한 것도 허정무 감독의 결정적인 실수였다고 SI는 분석했다.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풀백 구티에레즈가 수비 실수가 잦은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으로선 이 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 따라서 공격 능력이 뛰어난 박지성이 원래 포지션인 측면 미드필더로 투입됐다면 아르헨티나의 우측 진영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위건 어슬레틱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위건 감독도 박지성을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시킨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경기 직후 스포츠 채널 'ESPN' 방송에 출연, "그리스전과는 사뭇 달라진 허정무 감독의 전략이 패인이었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수비력도 문제였지만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두터운 진영인 중앙에 박지성을 배치한 것이 큰 실수였다"고 밝혔다.

    ◇선수 교체 타이밍 '엉망'…오범석 고집 왜?

    SI는 오범석의 투입 등 허정무 감독의 선수 기용 및 교체 타이밍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한국 선수 중에 제 몫을 해내고 있던 공격형 미드필더 기성용을 빼고 수비형인 김남일을 투입한 것 역시 흐름과 맞지 않았고 수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여러차례 저질렀던 오범석을 계속 뛰게하고 이날 경기에서 뚜렷한 활약이 없었던 염기훈 역시 풀타임으로 기용한 것도 의문이라고 SI는 밝혔다.

    다수의 네티즌들 역시 이날 한국의 선수기용 방식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그리스에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행동 반경이 좁은 이동국을 교체 투입한 점 ▲1-2로 한참 쫓아가는 상황에서 공격수 기성용을 빼고 수비수 김남일을 집어넣은 점 ▲오범석과 염기훈을 풀타임으로 뛰게 한 점 등을 대표적인 실수라고 지적했다.

    ◇무늬만 수비? 중원 압박 無…메시만 쫓다 다른 선수 놓쳐

    또한 전술적으로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한 점도 패착으로 거론됐다.

    북한과 스위스처럼 극단적인 수비 전술도 아니고 강력한 프레싱을 바탕으로 한 압박 축구도 아닌 색깔자체가 애매모호한 전략이었다는 게 경기를 관전한 네티즌들의 분석이다.

    한 네티즌은 "이날 한국팀은 중원에서의 강력한 압박이 사라져 아르헨티나 공격수들이 마음껏 뛰놀수 하는 공간을 열어줬다"면서 "그렇다고 북한처럼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사용하지도 않아 수비 숫자가 많음에도 불구 한국팀 진영에서 번번히 아르헨티나 공격수들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장면을 지속적으로 연출했다"고 평했다.

    특히 메시를 지나치게 의식, 한 선수에게만 2~3명이 계속 달라붙는 플레이를 펼치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선수들에게 공간이 열려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허정무 감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이날 패배의 원인이 자신의 '전략 부재' 탓 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패배한 이유에 대해 특별한 코멘트 없이 "아르헨티나에게 패한 것은 나이지리아전을 위한 일종의 보약이었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늘어놓은 것.

    나아가 허 감독은 "염기훈 선수가 골 찬스를 놓친 것에 대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마당에 선수를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특정 선수의 실수를 거론한 것은 감독답지 못한 처사였다는 게 네티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허 감독은 차두리를 기용하지 않은 이유도 "그리스전에서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뺐다"는 너무나 솔직하도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