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또다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다.
    그것도 북한의 공식기관인 총참모부가 “중대포고”를 통해 협박했다.
    사실 이 “서울 불바다”발언은 지난 94년 초 남북실무회담 때 북측 단장으로 나왔던 박영수의 작품이었다. 그때 김일성은 격노하여 “어디서 저런 무식한 놈을 단장으로 내보냈는가! 당장 해임시키라”라고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박영수를 따로 불러 “잘했다! 당신의 배짱이 마음에 든다.”고 격려했고, 김일성 사후에는 통전부 정책과 부과장으로 승진시켰다. 정책과 소속 대남심리전 부서에서 일하던 나는 업무차로 통전부 내 의암초대소에서 그와 한 달 가까이 함께 숙식하며 서울 불바다 발언의 전후사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리 언론은 북한측 대표의 발언이라는 점에 주목했지만 사실 그의 초강경발언은 구조적인 협상 전술의 일환일 뿐이었다. 남북대화를 할 때 우리는 대화하지만 북한은 대적(對敵)한다. 북한은 설사 유화 주제로 협상을 한다 해도 반드시 강경책을 별도로 준비한다. 그 이유는 대화의 신축성을 위해 협상 참가자들 각자 자기 역할이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상대교란, 갈등조장, 대화협박, 타협제시, 최종제안, 이렇게 나누어진 연기력으로 저들에게 유리하도록 협상안을 추진시키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사전에 대남심리전 부서들은 대화환경 조성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대남심리전을 펼친다. 또한 친북조직 담당 과들은 남한의 야당과 좌익단체들이 정부를 압박할 수 있도록 우회적 공격지령을 준다. 

    결국 북한의 유일독재와 달리 남한 당국 협상자들은 대화상대뿐 아니라 자국(自國) 내 설득이란 이중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초기 박영수의 “서울 불바다” 발언은 즉흥적인 공갈에 불과했다. 그런데 남한 언론과 사회가 남침설까지 운운하며 들끓는 모습을 보이자 그동안 군 강경 기능을 단순 무력대응 논리로만 여겨왔던 통전부에 새로운 영감을 주게 됐다. 

    그때부터 통전부의 대남전략은 남한 내 反정부세력을 확대시키는 차원에서 親北이냐, 反北이냐로 분류하는 논리가 아니라 보다 공세적인 평화냐 전쟁이냐, 즉 대화와 강경이란 이중구조로 뚜렷하게 확대 재편됐다.

    또한 이후 서해도발이란 새로운 장기성 협박전략을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안보를 주장해야 하는데 과거 10년정부의 무원칙한 평화공조 때문에 그 사이 북한의 평화협박전략은 더 공고화 됐다. 아니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북한 총참모부가 무엄하게도 공개적으로 “서울 불바다” 협박을 거리낌 없이 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북한은 대북심리전 방송이 재개될 경우 서울까지 타격하겠다고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그 공격 사거리야말로 역으로 현재 김정일이가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딱한 처지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군은 유엔 상임이사회 이후 대북방송을 재개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절호의 기회를 미루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천안함사건은 국제화 됐다. 지금 중국의 최대고민은 미국이 서해로 해군력을 파견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우리의 대북방송을 향해 총알  한 발이라도 발사한다면 지역불안을 근거로 미국 항공모함이 서해로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유엔 상임 이사국인 중국도 북한의 무력 재도발에 밀려 남한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김정일에게 대북심리전 방송보다 더 무서운 것이 중국 지도부의 분노이다.
    중국의 원조가 중단되면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어 화폐교환 후유증은 불치로 굳어질 것이다.
    그러면 체제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흔들리겠는데 과연 김정일이 중국보다 대북심리전 방송에 더 집착하겠는가? 

    우리가 현재의 북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중대변화가 있다.
    과거 배급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김정일이 정치를 잘 못해도 그 책임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복합 구조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김정일의 외교정치가 실패하면 그것은 즉시 시장에 반영되고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이어지는 관통구조다.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충분조건이고 또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카드인 것만큼 정부는 대북방송을 더는 지체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은 장진성님의 블로그에서 전재한 것임*-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