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플라스틱 기초 원료 '나프타' 수급 비상공급량 50% 급감에 '가수요'까지…유화사 공급 축소에 '울상'의류 부자재 업계도 직격탄…"제품값 인상 불가피"전문가 "공급망 마비…정부 실질적 대책 촉구"
  • ▲ 3일 오전 방문한 서울 중구 방산시장 전경. ⓒ임찬웅 기자
    ▲ 3일 오전 방문한 서울 중구 방산시장 전경. ⓒ임찬웅 기자
    "원료가 없어 제품이 나오지를 않아요"

    3일 오전 찾은 서울 중구 방산시장 일대. 국내 최대 포장재·의류 부자재가 모인 이곳 상인들의 표정은 중동 사태의 여파로 폭등한 '나프타(Naphtha)' 가격만큼이나 굳어 있었다.

    방산시장에서 포장 비닐 전문 업체를 운영 중인 60대 남성 김모씨는 "원료가 부족해 지금 주문해도 5월에나 받을 수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김씨는 "상황이 안 좋은데도 소비자들은 물건을 쟁여놓으려 해 구매 문의는 꾸준히 들어온다"면서도 "원료 수급 문제로 판매할 제품 수주가 늦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며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중간재인 폴리머를 원료로 하는 비닐·플라스틱 업계는 물론 섬유 업계까지 타격이 확산하고 있다. 폴리머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원료로 하는 고분자 소재로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 다양한 플라스틱 기반의 핵심 중간재다.

    이에 식품 포장재와 플라스틱 용기, 비닐 업체 등에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방산시장에서 포장 용기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도 "판매하기 위해 주문한 제품 수주 기간이 늘어났다"며 "물건이 없으니 장사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 ▲ 3일 오전 방산시장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가 진열된 점포. ⓒ임찬웅 기자
    ▲ 3일 오전 방산시장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가 진열된 점포. ⓒ임찬웅 기자
    시장에서 비닐 포장재를 취급하는 60대 남성 공모씨도 "원료 부족으로 유화메이커 기업들이 플라스틱 취급 업체에 원료 공급을 못 하는 상황이 가장 큰 문제"라며 "한 달에 100톤씩 쓰던 업체들이 지금은 40~50톤 정도밖에 공급을 못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급량이 50~60% 줄어들자 물건을 미리 확보하려는 '가수요'까지 붙으면서 수급 대란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공씨는 "소비자들도 가격이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르니 한 달에 한 묶음 정도 쓰던 곳들이 두세 묶음을 달라 하고 있다"며 "지난 1일부터 제품 가격을 25% 인상했는데 5~6월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증가한 원자재 가격과 공급이 잘 안 되는 상황에 구매자들 역시 우려를 표했다. 의류 부자재 납기 업체에서 근무하는 20대 남성 임모씨는 "의류 메이커가 요청한 부자재를 대량 구매해 해외 공장으로 선적하는 일을 하는데, 포장용 비닐을 주로 방산시장에서 거래한다"며 "요즘 거래처로부터 재고가 아직 안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고, 가격 인상 공지가 잇따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산시장 인근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여성 이모씨도 "아이스 커피를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수급이 가장 걱정"이라며 "업체 쪽에서 이미 수급이 지연될 수 있다는 공지를 해온 상태라 장사에 차질이 생길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 ▲ 3일 오전 방산시장 비닐 점포. ⓒ임찬웅 기자
    ▲ 3일 오전 방산시장 비닐 점포. ⓒ임찬웅 기자
    ◆"실도 석유에서 뽑는데" … 의류 부자재 업계도 '비명'

    이 같은 수급 불안은 섬유를 원료로 하는 의류 부자재 업계로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합성섬유 역시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PET) 등 나프타를 활용한 중간재를 기반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원사 가격 폭등은 밴드, 실 등 의류 제작에 필수적인 부자재 단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방산시장 내 관련 상가들은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의류 부자재 업체에서 근무하는 30대 남성 박모씨는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플라스틱과 비닐 쪽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았다"면서도 "원사 등도 대부분이 수입이다 보니 환율 영향까지 겹치며 전체적으로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 가격이 많이 올라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가격이 더 오를 수 있어 바로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판매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산시장에서 나일론 부자재를 취급하는 50대 여성 심모씨도 "실도 결국 석유에서 뽑아야 하는데 원사 자체가 너무 많이 올랐다"며 "원사와 염색 재료값이 20~30%가량 올라 상황이 전체적으로 많이 안 좋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없어 버텼지만 이제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5월부터는 제품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수필름 업체를 운영하는 50대 남성 정모씨는 "옛날 같으면 일주일이면 받을 물건을 3~4주 기다려야 한다"며 "제품에 따라 20%에서 50%까지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원료가 공급돼야 물건을 만들든지 할 텐데 비닐, 포장, 섬유 전반적으로 안 오른 게 없다"고 토로했다.

    패션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20대 여성 박모씨도 "학교 과제 때문에 방산시장 일대 의류 부자재 상가를 자주 찾는데, 밴드 가게 등에서 가격을 인상한다는 안내를 들었다"며 "요즘은 원자재값과 직결된 국제 정세 변화를 항상 찾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 ▲ 3일 오전 방산시장 A동 상가 내 섬유·밴드가 적재된 점포. ⓒ임찬웅 기자
    ▲ 3일 오전 방산시장 A동 상가 내 섬유·밴드가 적재된 점포. ⓒ임찬웅 기자
    ◆"한 번 오른 가격 안 내려가 … 선제적 지원책 파악 필요"

    이 같은 현장의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원료 수급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영세 사업자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나프타는 플라스틱·섬유·비닐 등의 원료로 실생활과 직결된 핵심 요소"라며 "정부는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중요도에 따라 나프타를 긴급히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 인상을 억제할 뾰족한 대책이 마땅치 않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 자영업자와 영세 사업자를 중심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경욱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도 "타국 간의 전쟁으로 벌어진 상황이라 중소 업체들에게 매우 가혹한 환경인 것이 사실"이라며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한 번 오른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 특성이 있어 이에 대한 선제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