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⑱ 

     「아니, 여길 왜?」
    내가 면회 온 오선희에게 처음 한 말이었다.
    다소곳하게 앉아있던 오선희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1900년 4월이다.
    이제 감옥생활이 차츰 몸에 배어가고 있었지만 오선희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다.

    둘이 서로 마주보고 앉았을 때 오선희가 말했다.
    「 뵙고 가려고 왔습니다.」

    그때 입회했던 간수가 뭘 찾는 시늉을 하더니 방을 나갔다. 면회실 안에는 둘 뿐이다.
    오선희가 간수한테 뇌물을 준 것이 분명했다.

    「아니, 어딜 간다는거야?」
    내가 물었지만 오선희는 시선을 준 채 입을 열지 않는다.

    지난 번 탈옥하기 전에 면회를 온 후로 일 년여만에 만나는 것이다. 그동안 오선희의 모습은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워졌다. 머리는 서양 여자처럼 파마를 한데다가 흰색 양장 차림이어서 어깨의 선이 다 드러났다.

    그 동안 오선희는 재석이나 기석을 통해 내게 사식을 넣어주기도 했고 책을 보내기도 했으므로 서로 근황은 안다.

    이윽고 오선희가 말했다.
    「저, 며칠 후에 일본으로 떠납니다.」

    놀란 내가 시선만 주었고 오선희의 말이 이어졌다.
    「아버님과 식구들 하고 같이요. 그래서 가산을 이미 다 정리했습니다.」
    「아니, 일본으로 옮겨가 산다는 말인가?」

    내가 묻자 오선희는 머리를 저었다.
    「아닙니다. 일본에서 하와이로 갈 작정입니다. 일본인 이민단에 끼어서요.」
    「하와이로 이민을...」

    말을 멈춘 내가 오선희를 보았다. 하와이에서 청과 일본인 이민을 받아들이고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 일본인 이민단에 끼어 하와이로 떠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때 오선희가 말했다.
    「아버님은 조선 땅에서 살지 않으시겠답니다. 곧 일본 속국이 될테니 망하기 전에 떠나겠다고 하셨어요.」
    「......」
    「오늘 마지막으로 뵙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오선희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선생님을 이곳에 두고 떠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아니다.」

    심호흡을 한 내가 오선희를 향해 웃어보였다.
    「잘했어.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조선 땅에 일이 있으면 성의껏 도와주도록 해.」
    「어떻게 잊겠어요?」

    그렇게 묻는 오선희의 눈에 물기가 번져졌다. 그러나 오선희는 또렷하게 말을 잇는다.
    「조국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이 부패한 왕조, 착한 백성을 어떻게 지우고 살겠습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문득 내 처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10년 형을 받고 감옥서에 갇힌 내가 어떤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오선희가 현실을 직시 해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돼.」
    내가 겨우 그렇게 말했지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다. 그러나 오선희의 표정을 본 내가 저도 모르게 말을 이었다.

    「나는 요즘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
    「희망을 잃지는 않아. 내가 죽는 순간까지.」

    그때 나는 오선희의 얼굴에 그늘이 덮여지는 것을 보았다.
    내 표정도 비슷했을 것이다.